2008 한국일보 신춘문예 마감일(12월7일)이 아흐레 앞으로 다가왔다. 작품 공모 사고(社告)를 게재한 지 2주 여가 지난 27일까지 시, 소설, 희곡, 동시, 동화 5개 부문에서 300여 명의 예비 작가들이 투고해왔다.
마감일에 임박할수록 응모작이 급증하는 것이 통례인 만큼, 최고의 작품을 탈고하려 수많은 문청(文靑)들이 지새고 있을 하얀 밤은 상상만으로도 눈부시다.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선배 작가들이 ‘소중한 당신’에게 격려와 조언을 전해왔다.
■ 최인호(소설가ㆍ1963년 소설 부문)작가는 21세기 유망직업이다
신춘문예는 문단 데뷔에 있어 가장 당당하고 아름다운 형식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한국일보 신춘문예 투고작이 ‘당선작 없는 가작’에 뽑힌 후 당선을 향한 독한 열망을 품었던, 자신만만했던 젊은 시절이 떠오른다. 요즘 문학, 활자 미디어가 쇠퇴한다는 말이 무성해서인지 옛날만큼의 열정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작가야말로 ‘21세기 유망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이란 유행이 없는 것이어서 정통적인 소설이 어필하는 시대가 다시금 도래할 것이다. 글솜씨가 있는 사람, 좋은 작가가 되고픈 야망이 있는 사람에게 문학은 평생을 두고 한 번 붙어볼 만한 일이고, 신춘문예는 그 길로 가는 최고의 등용문이다.
■ 윤후명(소설가ㆍ1979년 소설 부문)한국일보는 무난한 작품을 뽑지 않는다
내가 문청일 때 한국일보 신춘문예는 ‘샤프했다’. 다른 신문의 심사 기준이 다소 이념과 시류에 민감했다면, 한국일보는 김승옥 선배를 발굴했듯 감각적 작품에 대한 감식안이 있었다.
당시 한국문학 경향으로 볼 때 균형감 있는 태도였다. 68년에도 소설에 응모, 최종심에서 윤흥길 형과 겨루다가 떨어졌지만 좋은 작품이 당선돼서 유감 없었다.
신춘문예 심사를 맡아보면 자기 장점을 발휘하기보단 심사위원들에게 책잡히지 않도록 무난한 글쓰기를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당장의 당선 가능성을 높이는데는 도움될지 몰라도 개성 없는 ‘범생이’에 머물기 쉽다. 생의 지평선을 내다보며 창작하는 자세를 일찍부터 갖춰야 한다.
■ 김기택(시인ㆍ1989년 시 부문)‘입상용’에만 집착땐 작가수명 단축
새해 첫날 신인이 집중적 조명을 받으며 등단한다는 점에서 신춘문예는 매력적이다. 오랜 전통과 권위가 있어서 등단 후 활동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한국일보 시 당선자들은 문단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내가 당선되기 직전 정일근, 최영철 시인이 등단했고, 직후엔 이윤학, 박형준 시인이 나왔다. 한 해 6, 7명의 신춘문예 출신 시인 중 꾸준히 활동하는 경우는 2, 3명 뿐이니 자랑할 만하다.
소위 ‘신춘문예용’ 작품을 투고하면 당선이 어려울 뿐더러, 등단해도 개성과 장점을 드러내기 어려워 작가 수명이 짧다. 앞으로 어떻게 쓸지, 바로 활동할 준비가 됐는지를 미리 점검해야 등단 후 작품을 못쓰는 낭패를 면할 수 있다.
■ 박형준(시인ㆍ1991년 시 부문)개성을 뒷받침하는 ‘의식’이 필요하다
한국일보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면 우선 좋은 선후배가 있어서 좋고, 한 집에서 뒤처지면 안되겠다고 스스로를 독려할 수 있어 좋다. 앞으로 어떻게 살지 고민하던 인생의 기로에서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내가 선택한 길인 만큼 항상 열심히 써야겠다, 노(老)시인이 돼서도 능력은 떨어져도 노력은 하는구나 하는 평가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문청들은 우리 때보다 소재 면에서 훨씬 자유롭고, 문화적으로 접한 게 많아서 똑똑하고 능력있다. 하지만 좋은 능력에 비해서 뭔가를 걸어보겠다는 의식은 부족한 게 아닌가 싶다. 신춘문예에 임하면서 자신을 걸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이후의 전망도 열어둘 수 있다.
■ 조연호(시인ㆍ1994년 시 부문)자기 목소리 담은 새로운 詩 기대한다
계간지가 많이 생겨서 등단 기회가 많아졌다. 하지만 등단 제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신춘문예는 안다. 가장 화려한 등단의 길이고, 특히 한국일보가 문학적 전통에 있어 가장 앞선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어떤 등단 절차를 밟을지의 판단과 무관하게 기본적으로 자기 글쓰기에 충실해야 한다. 이전의 신춘문예 당선작들은 보편타당하거나 통념적인 룰에서 다소간 자유롭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반면 요즘 등단작을 보면 새롭고 발랄하고 개성이 뚜렷하다. 자신의 시적 주관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신춘문예용 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 목소리를 담은 새로운 시를 쓰길 바란다.
■ 손택수(시인ㆍ1998년 시 부문)치열한 습작정신 점검 무대… 도전하라
신춘문예 출신들은 문예지 출신과는 다른 외로움이 있다. 청탁받을 기회가 보장돼 있지 않아서 그렇다. 오로지 실력으로 그런 상황과 치열하게 승부할 수 있다는 점?신춘문예의 장점이다.
문학은 원래 고독과의 싸움 아닌가. 당선 통보 받았을 땐 벼랑 끄트머리에서 구원받은 기분이었다. 한국일보 출신 선배 시인들과 뭉치면 ‘우린 레벨이 다르다’란 자부심을 느낀다.
그 해의 심사위원 성향, 작품 편차 등 우연적 상황도 있지만 신춘문예는 단 한 편의 최고 작품을 뽑는 자리인 만큼 당선 여부와 관계없이 자기를 점검하기에 가장 좋은 제도다. 자기 문학을 멀리까지 보내는 스프링 역할을 하는 만큼 많이 쓰고 많이 투고하길.
■ 김도언(소설가ㆍ1999년 소설 부문)익숙하게, 그리고 즐겁게…
한국일보 신춘문예 출신 선배 작가들의 활동에 큰 인상을 받아서, 문단에 나갈 때는 꼭 이 신문이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문예지도 이미 유력한 등단 경로로 자리잡았지만, 분파적 영향력이 있지 않을까 싶어 저어했다.
공개입찰 하듯 공정성이 보장되는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는 것이 작가로서 큰 자긍심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새로운 작품을 만들겠다는 욕심보단 가장 친근하고 가깝게 와닿았던 것, 가장 잘 알고 마음 편히 쓸 수 있는 작품에 집중하길 바란다. 아무리 혹독한 훈련을 쌓았다 해도 막상 쓰는 과정이 힘들면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렵다. 익숙한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쓰길.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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