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철(49) 변호사의 26일 기자회견으로 삼성 비자금 조성 방법의 일단이 모습을 나타냈다. 해외 지점을 통한 수수료 과다계상은 분식회계 및 비자금 조성의 고전적 수법이랄 수 있다.
김 변호사는 "삼성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의 지시로 삼성물산이 해외지점을 통해 삼성전관(현 삼성SDI)의 장비를 대신 구입한 다음 구매가를 부풀려 삼성전관에 되판 뒤 실제 구매가를 제외한 자금을 비자금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그 증거로 삼성전관 구매팀장 서모씨가 삼성물산 런던ㆍ뉴욕ㆍ타이베이 지점장들과 맺은 장비 구매와 계약을 위한 '메모랜덤'(각서)을 공개했다. 그는 "이는 비자금 조성을 위한 합의서"라며 "이를 통해 2,000억원대 비자금이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문건에 따르면 삼성물산 런던지점은 삼성전관의 장비를 구매한 뒤 구매가의 120% 가격에 삼성전관에 넘겼다. "20%서 1%는 수수료, 나머지 과다계상된 19%는 비자금"이라고 김 변호사의 변호인 이덕우 변호사는 주장했다.
삼성물산이 100원에 사들인 장비를 120원에 삼성전관에 되팔아 1원의 수입을 챙긴 뒤 19원을 비자금으로 조성했다는 것이다.
삼성물산 뉴욕지점은 구매가의 120%로 되팔면서 수수료 2.5%를 뺀 나머지 17.5%를, 타이베이 지점은 구매가의 115%로 되팔면서 수수료 2%를 뺀 나머지 13%를 과다계상해 비자금으로 만들었다는 게 김 변호사 측 주장이다.
이 변호사는 "삼성물산은 삼성 계열사의 해외 구매를 대행하고 그룹 내 모든 공사를 맡기 때문에 다른 계열사에 비해 비자금을 만들기가 쉽다"고 덧붙였다.
문건 입수 경위에 대해 김 변호사는 "삼성전관 구매담당 강모씨가 퇴사를 당한 뒤 메모랜덤 등 비자금 관련 서류를 복사해 미국으로 들고 나가 삼성을 협박했다"며 "2000년께 구조본 김인주 전무(현 전략기획실 사장)가 이 문제를 의논해 와 메모랜덤 등 관련 서류를 봤고 '범죄를 저지르면서 근거를 남기느냐"고 한 마디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미국 샌디에이고에 사는 강씨가 김순택 삼성SDI 사장에게 협박 편지를 보냈으며, 이를 본 일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 측이 주장한 삼성 계열사의 분식회계가 또 다른 비자금 조성 통로가 될 지도 관심이다. 분식회계는 실제보다 수입을 축소하거나 비용을 부풀리는 게 일반적인 수법이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비자금이 조성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2000년 당시 삼성중공업 2조원, 삼성물산 2조원 등 삼성 계열사 5곳이 최소 6,000억원에서 최대 2조원대의 분식회계를 했다고 밝혔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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