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무시·모욕하는 일”, “한국정치에 분열ㆍ배신의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제 정신이냐… 역사의 죄인 될 것”…. 이 내용들은 전부 이회창 후보의 출마선언을 전후로 언론의 기사나 사설에 등장한 표현들이다. 중앙지 몇몇 언론은 노골적으로 이회창 후보의 출마에 대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으며, 심지어 국민의 목소리를 빙자하여 자신들의 의견을 사실인 양 보도했다.
이명박 후보의 입장에서, 이회창 후보를 초지일관 비판하는 사설과 기사들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이회창 후보의 출마와 관련해서 이해 당사자가 되는 사람들이 비단 이명박 후보 한 사람만은 아닐 것이다. 이회창 후보 본인, 범여권 후보들, 국민들이야 말로 현 정치상황의 당사자들이다.
그러나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를 주저하는 다수 국민들의 시각은 왜곡되고 범여권 후보들과 이회창 후보 본인의 입장은 짧게 언급될 뿐이다. 우리언론은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를 위한 입과 펜이 되었다.
물론 해당 언론들은 정파적 보도태도에 대한 반성보다는 한나라당 당원으로서 경선을 거치지 않고 갑자기 무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한 이회창 후보의 행동자체에서 자신들의 보도태도에 대한 정당성을 찾을 개연성이 높다. 경선 규칙을 어긴 것을 정당 정치에 대한 부정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민주주의와 정당정치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정당정치를 최고의 선으로 받아들이는 가정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도 정당정치도 인간의 삶을 풍요롭고 평등하며 질서 있게 만들 수 있는 하나의 시스템으로서 여전히 검증 중일뿐이다. 시스템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나치게 정당정치와 같은 시스템에 의존할수록 그 시스템은 주인이 되고 인간은 주변적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바꿔 말하면, 정당정치는 이를 운영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가치가 평가된다. 따라서 언론들이 정파적 보도태도를 정당정치의 수호라는 말로 포장하는 것은 말 그대로 포장일 뿐이다.
미국의 경우 정파적 보도태도는 19세기 후반 연방주의자들과 공화주의자들의 대립을 기반으로 신생언론들이 각각의 기관지 역할을 수행하면서 나타난 보도태도다. 이는 남북전쟁 당시에 그 절정을 이뤘으며, 대중지의 확산이 이뤄지게 되자 수익의 기반이 정당에서 대중으로 옮겨가면서 미국 언론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이에 비해 우리 언론의 정파적 보도태도는 현 정부에 이르러 오히려 강화되었다.
2004년 탄핵보도와 신행정수도 이전 보도에서 드러나듯 보수 언론은 특정 정당의 대변인 노릇을 했으며, 2005년 강정구 교수 사태에서도 특정 정당과 더불어 이데올로기 논쟁을 촉발시켰다. 2006년도 10월에 있었던 북한 핵실험 보도에서도 일부언론은 정치적 공세와 비방을 서슴지 않았으며 2007년 이즈음 대통령선거관련 보도태도에서도 정파적 이해관계가 여지없이 반영되고 있다.
정파적 보도태도가 문제되는 것은 국민들은 언론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믿음은 종종 ‘비판적 읽기’를 중지시키고 언론의 사실처럼 보이는 ‘의견’을 사실로 받아들이게끔 종용한다. 특히 정치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보도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언론에 전적으로 의존함을 고려한다면, 정파적 보도태도가 정권도 바꿀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인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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