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강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에 이어 동국제강이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생산하는 고로(일관제철소) 사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자동차강판, 선박용 후판 등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쇳물 독립’을 선언하고 있는 업체가 늘고 있는 것이다. 동국제강의 고로사업 출사표는 세계 최대의 철광석 산지인 브라질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업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동국제강은 20일 브라질 대통령궁에서 세계 최대의 철광석 공급사인 브라질 CVRD와 고로 건설 및 철광석 공급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21일 밝혔다.
총 2조원이 투자되는 일관제철소 프로젝트는 내년 상반기 브라질 세아라주의 빼셍 산업단지에서 착공되며, 이르면 2011년부터 쇳물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동국제강은 여기서 나온 쇳물로 연간 250만~300만톤 규모의 슬래브(선박등에 쓰이는 후판의 원료)를 만든 뒤, 이를 당진, 포항 공장으로 들여와 후판을 생산하게 된다. 쇳물(브라질)부터 최종 제품인 후판(한국)까지 생산하는 글로벌 일관제철소 체제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동국제강은 그 동안 원료의 자체 생산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조선용 후판을 주로 생산하는 동국제강은 조선산업의 유례없는 호황에 따른 후판 가격 상승에도 불구,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세계적인 원자재 수요증가 탓에 슬래브값도 적지 않게 올랐기 때문이다. 포스코와 함께 국내 후판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동국제강(점유율 30%)은 연 280만톤의 후판을 전량 수입해 왔다. 그룹 관계자는 “10여전부터 포스코로부터 슬래브를 공급받지 못해 해외서 조달하는 등 적지않은 설움을 겪어왔다”고 강조했다.
장세주 회장이 사운을 걸고 일관제철사업에 도전장을 던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창업주인 장경호 회장, 장상태 2대 회장 등 선대 회장 시절부터 글로벌 철강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숙원사업이기도 했다.
장 회장은 이런 탓에 2001년부터 철광석 원료가 풍부한 브라질을 점찍어 놓았으며, 7월 브라질 정부와 긴밀한 협의가 진전됨에 따라 지난달 로저 아그넬리 CVRD 회장과 고로사업 합작에 전격 합의하는 성과를 거뒀다.
1954년 국내 최초의 민간 철강기업으로 탄생한 동국제강이 50여년만에 고로사업에 진출, 포스코, 현대제철과 함께 국내 3대 일관제철소 시대가 개막될 전망이다. 해외 진출로는 이미 인도 제철소 건설을 추진 중인 포스코에 이어 두 번째다.
연간 3,000만톤을 생산하는 포스코나 800만톤 규모의 제철소를 건설 중인 현대제철에 비해 규모는 미약하다. 하지만 세계 최대의 철광석 업체와 손잡아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데다, 이를 바탕으로 생산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점도 유리하다.
동국제강은 향후 쇳물 생산능력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자동차 강판 등 냉연제품을 만드는 계열사 유니온스틸 역시 원료인 열연강판(핫코일)을 전량 외부에서 조달하고 있다.
때문에 고로를 추가로 지어 연 500만~600만톤으로 생산능력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유니온스틸에 열연강판을 공급하고, 나아가서는 브라질 현지판매와 미주 지역 수출도 고려하고 있다.
한화증권 김종재 연구위원은 “철강업체들이 원료 부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 최대 철광석 생산지인 브라질 진출 경쟁을 벌이고 있다”면서 “동국제강이 브라질에 진출한 것도 의미가 크지만 브라질 정부의 지원 아래 CVRD와 손잡은 것도 향후 기업가치를 높여주는 호재”라고 평가했다.
■ 손 꼭잡은 브라질
20일 동국제강과 CVRD와의 고로사업 양해각서(MOU) 체결식은 이례적으로 브라질 대통령 궁에서 이뤄졌다. 조인식 자리에 함께 한 룰라 대통령은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의 손을 맞잡고 "연방정부가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뿐만 아니다. 주정부의 광업에너지 장관, 상공개발부 장관이 참석했고, 제철소가 들어설 세아라주 주지사와 상ㆍ하원 의원 20여명도 참석했다. 이번 사업 파트너인 CVRD의 로저 아그넬리 회장은 장 회장 일행에게 전용기까지 내주었다.
동국제강이 이처럼 브라질에서 주목 받은 이유는 뭘까. 브라질의 철광석 매장량은 무려 750억톤으로 추정된다. 이밖에 20억톤의 석탄을 포함해 아마존강 지역에는 추정하기 어려울 정도의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다.
아쉽게도 브라질은 생산능력이 열악한 탓에 이런 자원을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으로 바꾸지 못하고 있다. 룰라 대통령이 이날 축사에서 "중국은 연간 4억5,000만톤의 철강을 생산하는데, 브라질은 3,200만톤에 그치고 있다"며 자국 철강산업 육성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마음에 맞은 파트너가 있다면 언제든지 '윈-윈' 효과를 노리겠다는 것이다.
브라질의 이런 의지에다 동국제강의 현지화 노력이 큰 기여를 했다. 동국제강은 2001년부터 브라질 제철소 건립에 공을 들여왔다.
2005년부터 슬래브 공장을 추진해 왔고, 당시 착공식에 참석한 장 회장은 지역 주민들에게 연설할 원고를 현지어(포르투갈어)로 통째 암기해 능숙하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지역 여론의 호응이 좋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기수 기자 bless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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