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은 하나지만 어떻게 오르느냐에 따라 길이 갈라진다. 쉬운 길로 오르는 등정주의(登頂主義)와 어려운 길로 오르며 고난을 극복하는 등로주의(登路主義)가 있다.
“보다 어렵고 다양한 길로 올라라!” 이것만이 등산의 핵심이라 외친 사람이 있었다. 등정주의를 폐기하고 등로주의를 부상시킨 영국 산악인 머메리(Mummery)였다. 머메리즘(mummerism)이라는 그의 정신은 19세기말부터 지금껏 계승되고 있다. 그가 히말라야의 낭가파르바트에서 죽기 전 “등산가는 자신이 숙명적인 희생자가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산에 대한 숭상을 버리지 못한다”고 한 것은 자신의 등반 철학이 위험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산행 스타일은 만용에 가까우리만큼 자신감에 넘쳐있었고 머메리즘에 심취해 위험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듯 자아도취에 빠진 내게 성찰의 기회를 준 것이 추락이었다. 단독등반 하던 막내 동생이 1973년 스물 일곱의 꽃다운 나이로 도봉산 선인봉에서 생을 마감하고 얼마 되지 않던 때라 눈총이 따가웠으나 산을 향한 내 열정은 활화산처럼 식을 줄 몰랐다. 산은 이토록 사람을 깊이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180㎝가 넘는 훤칠한 키 때문에 장다리로 불렸던 동생은 생전에 단독등반가 게오르 빙클러와 에밀 지그몬디를 좋아했고 로제 듀프라의 시 <그 어느 날> 을 애송했다. ‘그 어느 날 내가 산에서 죽으면 오랜 나의 산 친구에게 전해주게’로 시작하는 이 시가 죽음의 현장에서 가져온 피 묻은 수첩에 정성스레 기록돼 있었다. 동생은 죽기 전날까지 북한산 인수봉 동남면에 바위길 아미동 코스를 개척하다가 선인봉으로 간 그날 이승을 등진 채 홀연히 사라진다. 그>
나는 머메리즘에 심취해 틈만 나면 설악산 울산암, 천화대, 칠형제봉 등을 야생마처럼 누볐고 어려운 루트만 골라 다니며 기량을 쌓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76년 7월 나는 인수봉에서 최초의 추락을 경험한다. 빗물에 젖은 슬랩(slab)의 표면은 미끄러웠다. 두 눈을 감고도 오를 수 있는 익숙한 루트였기에 두 피치 50m를 오르면서도 중간에 안전을 위한 확보물을 한 개도 설치하지 않은 채 올랐다.
등산은 1%의 불확실성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룰을 무시한 채 뛰듯이 올랐다. 그러다가 확보용 피톤(piton)을 1m 정도 남긴 지점에서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내 발이 물기를 딛는 순간 슬립(slip)을 먹으면서 땅 바닥을 향해 쏜살같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10m. 20m. 30m....추락 거리가 길어질수록 가속도가 붙어 제동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바위가 하늘로 치솟고 땅이 솟구치고...
그날 내가 떨어진 거리는 로프 한 동 길이였으니 대충 계산해도 40m쯤 되는 것 같다. 한 순간의 일이었지만 내게는 길고 긴 추락의 경험이었다. 지금도 그 느낌이 생생하다. 더욱 놀란 것은 그 짧은 순간에도 방어본능이 작용했다는 사실이다.
추락방향의 아래쪽에 오버행(overhang)의 바위 턱이 있다는 사실이 전광석화처럼 떠올랐고. 그 순간 바위를 양 손으로 밀쳐내며 스노보드 선수가 공중회전 묘기를 연출하듯 몸을 뒤로 돌려 땅바닥을 향해 뛰어내렸다. 만일 그런 방어동작을 취하지 않았다면 바위 턱에서 몸이 뒤집히면서 거꾸로 땅바닥과 충돌해 팽개쳐진 수박처럼 머리가 박살 났을 것이다.
그때 내 확보를 맡았던 후배는 유동욱이다. 그러나 그도 중간 확보물을 설치하지 않고 오르다가 떨어진 나를 더 어쩌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2년 뒤 안나푸르나 4봉 정상에 오른 후 하산하다 크레바스 속에서 비박을 하던 중 동상에 걸려 발가락 10개를 모두 절단하는 불행을 겪는다.
암벽이나 빙벽에서 모든 것을 거는 산 꾼은 위험의 종류가 어떤 것인가를 알고 사고를 예측한다. 산꾼은 추락할 때 보통 사람이 사고를 당할 때와 달리 대응한다. 그날 추락한 나는 척추압박골절상으로 2개월 동안 병상의 감옥에 갇힌 채 고통스런 휴식의 나날을 보냈다. 퇴원할 무렵에는 겨울이 성큼 다가왔고 계곡에 걸린 폭포의 얼음이 얼기 시작했다.
등산, 그것은 병인가보다. 나는 문병 온 후배를 꾀 금속으로 된 보디캐스트(허리보정물)를 착용하고 빙벽등반을 했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는 “형, 몸에 찬 것이 혹시 신장비가 아닌지요?” 라고 물어 보기도 했다. 산 꾼에게 추락은 성장의 고통이며 자기성찰의 기회이다. 첫 추락을 경험한 나는 매사를 신중하게 대처했고 오만했던 나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코오롱등산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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