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33)은 참 정체를 알 수 없는 가수다.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전국 어느 노래방에서나 끊임없이 선택되는 발라드 ‘달팽이’로 처음 알려졌다. 그러나 패닉 2집에서 김진표와 들려줬던 도발적인 노래는 그를 몇 글자로 정의할 수 없게 만들었다. 마치 ‘외계 잡학사전’의 첫 장을 보는 듯한 곡들이 섣부른 잣대를 가로막던 시절 이후.
그는 걸출한 뮤지션 김동률과 앨범 <카니발> 을 만들고, 모던 펑크에 푹 빠졌던 그룹 긱스 시절을 보내고 단어가 아닌 문장으로 정의해야 하는 복잡한 가수로 성장했다. 2005년엔 소설 <지문 사냥꾼> 을 출간, 작가로서의 면모까지 보여줘 정체는 더욱 모호해졌다. 지문> 카니발>
내달 보름 결혼을 앞둔 그는 분주할 법한데도 여유롭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빈둥빈둥’한 생활태도가 머릿속을 정리해놓은 덕분에 12월 1, 2일 김진표와 김동률이 함께하는 대형 콘서트를 갖는 여유도 만들어냈다. 결혼을 해 본 사람만이 공감하는 결혼 전 며칠의 분주함을 초월했을까. 그래도 광화문에서 만난 그는 결혼생활에 대한 설렘과 가수로서 이겨내야 하는 부담을 함께 짊어지고 있었다.
변신이 휘황찬란해도 그의 첫번째 수식어는 변함없이 김진표와 함께한 패닉이다. 2005년 이후 입을 굳게 다문 패닉의 복귀는 언제일까. 팬이라면 가장 먼저 떠올릴 법한 질문이다. “진표가 지금은 솔로 음반을 준비 중이라서 당장은 패닉 앨범을 낼 계획이 없어요. 이후 몇 년은 혼자서 ‘이적’의 노래를 부를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패닉이 해체하는 일은 없어요.”
이적의 노래? 그게 뭘까. 우선 패닉과 이적이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글쎄요. 랩을 하는 진표가 있어서 패닉의 음악은 리듬이나 요소가 많이 다르죠. 세상에 없는 음악을 하려는 취향이라고 할까. 특히 외국인이 물어오면 스스로도 ‘과연 뭘까’라는 의문이 들어요. 포크와 록 그 사이의 어디인가에 자리하지 않았을까요. 잘 모르겠네요.”
그가 쓴 책 <지문 사냥꾼> 은 15만 부가 팔렸다. 대만과 태국에도 출간됐다. 몇만 부 팔리기도 힘든 음반에 매달린 한국의 가수가 올린 성적치고는 꽤 괜찮다. 이참에 또 한 권의 책을 내놓을 생각이다. “원래 쓰는 걸 좋아해요. 머릿속에 쌓아놓은 짤막한 이야기들을 묶어서 내년에 낼 생각이에요. <지문 사냥꾼> 과 비슷한 픽션 물이면서 음악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지문> 지문>
얼마 전 앨범을 내고 돌아온 박진영, 내년 복귀무대를 예고한 서태지 등 90년대를 풍미한 스타 가수들의 컴백은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다. “이들은 지금 활발하게 활동하는 음악인들에 비해 전혀 밀리지 않습니다. 기운이 빠진 가요시장에 충분히 활력을 줄 사람들입니다. 음악을 하려는 어린 세대에게 좋은 자극이 될 것입니다.”
5년 전 지인의 소개로 만난 후 사랑을 이어 온 짝은 미국에서 무용을 공부하고 있다. 결혼 후에도 당분간은 ‘방학 부부’로 살아야 할 처지. 그래도 결혼은 얌체 공 같이 튀는 이적의 음악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게 뻔하다. 그는“음악을 만들 때 혼자서 별 짓을 다해요. 실제 하루 1~2시간 곡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빈둥거린다고 할까요. 스스로 봐도 시간을 민망하게 보내는데, 결혼하면 이게 조금 걱정되네요. 그래서 작업공간을 따로 만들 생각이랍니다” 고 걱정(?)스럽게 말한다.
그에게도 요즘 음악시장의 불황이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잘 팔리는 소설 덕에 전업작가로 돌아서라는 충고가 종종 들리지만 그래도 음악은 포기하기에 너무 달콤하단다. “마음엔 안 들지만 파일을 사고파는 음악시장이 정착하겠죠. 문제는 앨범보다 싱글로 경쟁하는 시장이 형성된다는 것이죠. 작품성 평가는 이뤄지지 않은 채 한 곡 한 곡이 악다구니 다툼을 하는 싸움판이 만들어집니다. 여기에 들어가서 경쟁해야 하는지. 고민이죠.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관둘 생각은 없어요.” 공연문의는 1544-1555.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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