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은 한 언어의 역사일 뿐 아니라 사람들의 잔해, 자취, 세월의 위엄이 아로 새겨진 삶의 주름입니다.”
한국어 규범의 수문장 격인 국립국어원의 이상규(54ㆍ사진) 원장이 최근 <방언의 미학> 을 펴내고 방언의 부활과 표준어정책 전환 문제를 제기했다. 경북대 국문과 교수로 방언을 전공한 이 원장은 사회 변화와 표준어 정책에 밀려 사라지는 민속생활, 놀이, 음식, 복식 등 문화 곳곳에서 살아 숨쉬는 방언의 숨결을 전달한다. 방언의>
그는 “20세기는 영어, 프랑스어 등 힘센 나라의 언어가 소수 언어를 포식한 시대였다”며 “중심과 변두리를 가르는 이 패러다임이 우리 내부에서는 표준어가 방언을 포식하는 형태로 작용했고 이 책은 이를 반성하는 한 언어학자의 성찰적 보고서”라고 고백했다.
이 원장은 생태계의 진화가 ‘종 다양성’의 기반 위에서 가능하듯 언어 역시 대표단수만 옹호하면 그 다양성이 무너지고 진화에 역행한다고 역설했다. “농경 사회였던 우리는 논을 가락부리, 구렛들, 대추나무매미, 미그리매미, 사슴머리 등 수십가지로 불렀다”며 “현장에서 사용하는 민중의 언어, 역사의 때가 묻은 이 같은 어휘를 표준어가 아니라는 이유로 다 내다버려야 할 것인가?”라고 되묻는다.
한국어 어휘에서 고유어가 20%를 넘지 못하고 그나마 새로 편입되는 어휘의 다수가 국적불명의 외래어인 점을 고려하면, 한국어 자산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도 방언의 적극적 편입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조선어학회가 1933년 제정한 ‘대체로 현재 중류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한다’는 표준어 규정의 유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시했다. “당시 서울은 인구가 20만명이었지만 지금은 1,000만이 넘는다”며 “규정을 제정할 때 우리 모델이었던 일본이 도쿄의 급격한 팽창과 인구 증가를 계기로 1949년 이후 표준어 정책을 폐기한 점은 시사하는 바 크다”고 덧붙였다.
표준어의 대안으로 그가 제시하는 것은 ‘공통어’ 다. 개념이 조금 애매하지만 한민족 안에서 두루 소통될 수 있는 공통성이 가장 많은 현대어, 교육 받은 지방 사람들이 서울에 와서 소통이 가능할 정도의 언어를 의미한다고 그는 설명한다.
그는 “표준어의 규범 자체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낱말의 폭을 넓히자는 의미에서 지나치게 폐쇄적인 규정을 바꾸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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