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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앞둔 서울대 유일 마르크스 경제학자 김수행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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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앞둔 서울대 유일 마르크스 경제학자 김수행 교수

입력
2007.11.22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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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주문이 요즘처럼 한국사회를 압도한 시대가 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학기를 끝으로 강단을 떠나는 김수행(65)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퇴임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국내 최초로 <자본론> 을 완역(1989)한 그는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중 유일한 마르크스 경제학(정치경제학) 전공자다.

후임은 내년 초 교수회의에서 최종 결정되지만 이미 경제학부에서는 후임자의 전공을 ‘정치 경제학’이 아닌 ‘경제학 일반’으로 못박아두었다. 그 자리는 32명의 동료 교수들이 그렇듯 영미식 주류경제학 전공자가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정년기념식과 기념논문집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 의 봉정식(22일)을 앞두고 있는 김 교수를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아무리 신자유주의, 주류경제학의 시대라 하지만 33대 0이라니 이건 너무하다. 마르크스의 경제학이 자본주의 문제를 분석하는 데 가장 유효한 담론이라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마르크스가 관찰한 자본주의의 핵심동력은 자본가들의 이윤추구 욕심이고, 그런 의미에서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립과 갈등은 불가피하다고 봤죠. 반면 주류경제학은 노자(勞資) 간의 갈등을 ‘노동자들이 탐욕스러워서 그렇다’는 식으로 몰아붙입니다. 과연 어느 쪽이 옳을까요.”

그는 동료 교수들 대부분이 신자유주의 모델을 신봉하는 미국의 ‘시카고 학파’ 이론을 학문적 근거로 삼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 자본주의를 인정하지만 시장에 대한 정부개입을 주장하는 케인즈주의자조차 거부하는 게 학교 분위기”라며 “사실 제자이자 케인즈주의자인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가 우리 학교에 왔으면 바랬지만 그것조차 잘 안되더라”고 씁쓸해 했다.

1989년 학내 비판문제로 한신대에서 쫓겨난 그를 서울대로 불러온 이들이 동료 교수들이 아니라 당시 “‘정치 경제학자’를 모셔달라”고 연좌농성을 펼치던 대학원생들이었다는 기억을 떠올린다면 달라진 것은 없는지도 모른다. “시장은 무질서하고 무정부적이다” “자본주의는 일시적인 체제에 불과하다”고 일관되게 강조해온 그가 서울대에서 19년이나 버텨온 것이 오히려 ‘기적적’인 사건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월 만큼이나 학생들도 변했다. 최근 각 대학생들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자신의 정치성향을 ‘보수적’이라고 밝힌 서울대생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는 결과는 시사적이다. 김 교수는 “경제적 혜택을 받고 자라서 그런지 요즘 학생들은 투자기법, 금융상품 같은 과목에만 관심을 보인다”며 “이들이 어떻게 빈곤의 문제, 비정규직의 문제, 농민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겠느냐”고 안타까워한다.

퇴임 뒤 그는 일종의 ‘학교 밖 아카데미’인 용산의 사회과학대학원에서의 강의활동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이미 지난 봄부터 이곳에서 마르크스주의 강의를 맡고 있다. “86명의 수강생중 학생은 3명 뿐이고 나머지는 시민운동가, 언론인, 교사, 엔지니어 등 일반인입니다. 기술이 발전하면 더 잘 살게 된다고 했는데 왜 항상 ‘해고’의 공포에 떨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들은 몸으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어 강의에 힘이 납니다.”

<자본론> 과 <국부론> 완역 등 그가 보여준 정력적인 저술활동도 계속된다. 지금까지 국내학계에서 무관심했던 주류경제학과 비주류경제학의 이론을 아우르는 <경제학설사> 도 집필할 계획. 그는 “마르크스주의가 어떤 체제를 만들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한다는 비판은 받아들인다” 며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기업가나 자본가가 아닌 주민들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새로운 사회’로 가는 길을 보여줄 것임은 분명하다”고 말을 맺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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