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사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국국어교사모임이 공동 주최하는 ‘문장 청소년 문학상’ 10월 시 장원에 추진수(부산 대연고)군의 <냉장고> 가 뽑혔다. 이야기글 부문에는 박서련(강원 철원여고)양의 <고교 시절> , 비평ㆍ감상글에는 김민수(제주 남녕고)군의 <시월애를 보고> , 생활글에는 김제성(제주사대부중)군의 <끊어진 혈맥을 이으며> 가 각각 장원으로 선정됐다. 당선작은 ‘문장’ 홈페이지(www.munjang.or.kr)에서 볼 수 있다. 끊어진> 시월애를> 고교> 냉장고>
■ 냉장고
-추진수 (필명 오백원)
원인 모를 공복감으로 문을 연다.
엄마는 전기를 아껴야 한다고 했지만
냉장고 속은 끊임없는 허기로 팽창한다.
김치냄새가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우주에서
아빠는 알레스카산 오렌지였다.
그는 항상 선키스트와 델몬트 사이에서
오렌지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물론 나는 이름 모를 상표를 떼어내고
아빠를 먹는다, 아빠
아빠 말대로 이곳에선 오렌지나무가 자라요.
그러나 냉장고의 우주를 내 뱃속으로 가져갈 때
나는 불랙홀이어요 오렌지 농장에선
산성비가 위액처럼 쏟아지는데요.
멍청한 소리 마라 아들아
너는 빛깔 나쁜 오렌지 하다 못해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라도 되어야 한다.
누군가의 허기가 문을 열어줄 때까지
별빛을 그리워해서도 안되며
잘 진열된 혼돈 속에 다소곳이 앉아야한다!
그러나 이곳의 포만감은 무한대로 공허하고
냉장고 속에 앉아있을 때
엄마는 전기를 아껴야한다며 문을 닫는다.
나는 원인 모를 공복감이다.
시간에 없는 도돌이표를 찾고 있다.
■ 심사평
오백원의 <냉장고> 는 대상에 대한 관찰과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인식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이런 관찰과 인식이 냉장고 속에 상상의 공간인 무한한 우주로, 이 시를 읽는 사람들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냉장고>
이런 상상은 읽는 이에게, 아무리 작은 일에도 어떤 무시무시한 음모가 숨어 있을지도 모를 것 같다는 긴장감을 만들어 주며 시를 읽는 재미를 한층 더 돋워주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흔한 소재 속에서 광활한 우주를 발견하고 시적 자아의 가족사를 상징적으로 암시한 완성미 있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김경주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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