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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어리석은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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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어리석은 교육부

입력
2007.11.22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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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에 노무현 대통령이 대학총장들과 대화를 하면서 가난한 학생들이 대학에 쉽게 가도록 만들겠다고 말했을 때 반대하는 글을 쓰려다가 말았다. 설마 그런 말도 안 되는 정책이 실제로 입안되랴 의심했기 때문이다. 헌데 역시 대한민국이다. 대통령이 하는 말은 어쨌든 정책이 되는가 보다.

교육부는 최근 기초생활보장수급대상자와 차상위자 가정의 청소년들을 대학에 가외로 입학시키고 학비도 대주는 정책을 제안했다. 기초생활보장수급대상자는 전체 인구의 3% 남짓이니 이 정책이 실행된다면 가난한 덕분에 인문계 고등학교만 들어가면 대학은 그냥 갈 수도 있다.

● 가난하다고 대학 가기 쉬워서야

기부금 입학이 나쁜 것만큼 이 정책은 나쁘다. 둘 다 실력이 없으면서 부모 덕분에 대학을 쉽게 가도록 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아직은 대학이 공정한 사회진출을 위한 척도이다.

잘 사는 부모 덕분에 명문대학에 쉽게 들어가는 것이 안 되듯 가난하다는 이유로 노력 없이 대학 입학이 쉬워서도 안 된다. 그것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인 공정한 경쟁을 막고 가난해도 열심히 공부하려는 청소년을 모욕한다.

노무현 정부는 양극화를 해소한다면서 실제로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거해서 가난한 사람을 양산해왔다. 진의가 무엇이든 이 정부 들어서 빈부격차는 커졌다.

그러자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는 명분 아래 가난한 사람을 거지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녹색평론> 에 농업운동가 천규석씨가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며 쓴 표현을 빌려 말하건대, 가난하다고 거지는 아니다.

가난해도 스스로 먹고 살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이 있어도 남한테 손 벌리는 사람이 있다. 잘 살면서도 대기업의 뇌물을 즐기는 이는 거지지만 가난해도 스스로 살려는 이는 존경 받을 만한 서민이다.

사회가 건전하려면 존경 받을 만한 서민이 잘 살도록 제도를 고쳐가야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무작정 도와서 거지의 정신상태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이런 정책을 양산하다 보니 돈이 그냥 굴러다니는 것 같고 그래서 공무원들이 남의 돈 받기를 쉽게 여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개선안에서 더욱 우스운 것은 재외국인과 외국인을 위한 특별조항은 여전히 남겨 놓았다는 데 있다. 이것은 외국에서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별도의 경쟁을 치르게 하는 것으로 특권층을 위한 제도이다.

한국의 대학에 입학하려면 한국의 대학입학에 적용되는 원칙을 누구나 지켜야 옳다. 한국인들이 미국의 대학에 들어가려면 미국 대학입학에 적용되는 원칙을 지키듯이 말이다.

과거에 공무원과 잘 사는 사람이 그들 자녀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놓은 이 불평등한 입시특혜가 현 정부 들어서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참 이상하다.

현 정부는 극빈층과 특권층을 위해 특별히 대학입학을 더 쉽게 만들어서 제 실력으로 좋은 대학에 가려고 노력하는 청소년들을 우습게 만든다. 이러면 사회의 근간인 중산층이 더욱 흔들리게 된다.

정부가 진정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육을 하고 싶다면 먼저 고등학교 교육부터 의무화해야 한다. 그 다음에 장학금이 가난한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가게 만들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장학금은 공부를 잘 하면 받도록 되어 있는데, 공부를 잘 해도 스스로 낼 여력이 있으면 장학금을 받지 않도록 정부 장학금부터 원칙을 바꿔야 한다.

● 극빈층 입시전형료 지원부터

마지막으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차상위자들을 위해 대학입학시험 전형료를 대신 물어주는 정책은 나와야 한다. 현재의 대학 입시제도는 수시에서는 무제한으로 응시할 수 있고, 정시에서는 3개 대학까지 골라서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가난한 학생들은 대학마다 몇 만원씩 하는 입시전형료가 무서워서 여러 대학에 지원하지 못한다. 그래서 실력에 비해 좋은 대학을 갈 확률이 낮다. 이런 불평등을 없애주기 위해 입시전형료를 대납해주는 방안이 필요하다.

어떤 경우에도 열심히 공부해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원칙은 지켜야 한다. 그것이 그나마 한국사회를 이만큼 발전시킨 동력이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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