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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영주 부석사…배흘림기둥 기대서니 만추의 서정이 사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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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영주 부석사…배흘림기둥 기대서니 만추의 서정이 사무치다

입력
2007.11.22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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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의 가을은 노랗게 익고 있었다.

어느 길을 달려도 영주는 노란 은행잎의 가로수로 눈이 부시다. 소수서원을 거쳐 부석사로 오르는 931번 지방도로의 은행나무 터널을 달리는데 마음이 점점 급해졌다. 산자락에 걸려있는 햇덩어리가 금세 넘어가려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해 떨어지기 전에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에 기대 황혼의 부석사를 맞으러 떠난 길이었기에 가속기를 밟은 발에 자꾸 힘이 들어갔다.

무량수전 앞 절마당에 도착했을 때 다행히도 해는 아직 지지 않았다. 석양이 던진 마지막 빛이 안양루 기와지붕 위로 붉게 번져 올랐다.

무량수전 옆 삼층석탑 앞에서 바라본 풍경. 태백의 연봉들이 남으로 치닫는 산세가 장쾌하다. 물결 치는듯한 겹겹의 산 능선을 배경으로 마당 끝에 우뚝 선 안양루가 공중으로 둥실 떠오를 것만 같다.

무량수전은 기둥 위에 공포만 있는 단순한 주심포 건물이다. 꽃창살 하나 없고 벽면에 그 흔한 벽화도 없다. 단청도 다 지워져 나무는 맨살 그대로다. 하지만 이 그냥 그대로의 단순명료한 아름다움이 무량수전을 한국 건축의 백미에 올려놓았다.

■ ‘조선땅 최고의 명상로’

다음날 이른 아침 다시 부석사를 찾았다. 황혼의 부석사가 장엄하다면 아침에 말갛게 깨어난 부석사에는 청초함이 있다. 매표소를 지나 일주문으로 향하는 은행나무길의 고요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부산해지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느긋한 걸음으로 노란 낙엽을 밟으며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으로 오르는 부석사의 비탈길을 유홍준(문화재청장)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에서 ‘조선땅 최고의 명상로’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길 옆은 온통 사과밭이다. 아직 수확이 끝나지 않은 과수원에는 주렁주렁 사과가 매달려있다. 이파리 하나 없는 앙상한 가지들이 축축 늘어져 수십 개씩의 빨간 열매를 매달고 힘겨워하고 있다. 붉은 사과와 노란 은행잎이 안내하는 정갈한 구도의 길. 부석사로 오르는 만추의 여정이다.

■ 성혈사 나한전, 눈부신 문살조각

소수서원 건너편 소백산 골골에도 천년 이상의 사찰들이 다소곳이 앉아있다. 죽계구곡에는 신라 의상대사가 절(지금의 부석사)을 세울 곳을 찾기 위해 임시로 초막을 짓고 머물렀다는 초암사가 있고, 그 이웃 골짜기에는 성혈사가 있다.

휑뎅그렁한 절집 성혈사는 멀리서는 초라하게 보이지만 아름다운 보물을 품고 있다. 나한전(보물 제832호)이다. 세 칸으로 이뤄진 나한전의 정면에는 여섯 개의 창호문이 달려 있다.

이 창호를 장식한 정교한 문살조각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가운데 두 개의 문살은 여느 절집의 창살에서 볼 수 없는 모양이다. 연꽃과 연잎 가득한 연못에 물고기가 노닐고, 그 물고기를 잡는 새, 연잎에 올라앉은 개구리, 연꽃 줄기에 매달린 동자가 함께 어울려 있다.

마치 민화 한폭을 보는 듯한 정겨움이 있다. 어릴 적 문득 잠에서 깨어 안방 자개장롱에 새겨진 학 문양을 보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상상의 날개를 펼쳤듯, 모처럼 마음에 여유를 전해주는 꽃창살이다.

성혈사 나한전에는 중앙의 비로자나불 좌우로 16나한이 모셔져 있다. 나한의 모습도 가지각색, 장발도 있고 대머리도 있다. 제각각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나한을 보고 있자니 슬며시 웃음이 번진다.

나한전 앞에 있는 한 쌍의 석등도 재미있다. 거북에 올라탄 한 쌍의 용이 서로를 휘감고 하늘로 오르는 모양이다.

■ 선비촌에서 하룻밤을

소수서원 바로 옆에는 영주의 새로운 관광지로 떠오른 선비촌이 있다. 선비촌은 영주 각 지역의 옛 집들과 정자 등을 본떠 한데 모아 지은 대규모 민속마을이다.

기와집 15채와 초가 13채, 강학당, 누각, 원두막 등 22채의 건물에다 토속음식점 난장 특산품점 등이 운영되는 저자거리까지 갖췄다(입장료 어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500원). 이곳에서는 고택의 하룻밤을 체험할 수 있다(방 1칸 1박에 2인용은 2~3만원, 4인용은 4~5만원). 선비촌을 통해 입장하면 소수서원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054)638-7114

선비촌 앞 도로 건너편에는 단종 복위운동을 했던 금성대군이 죽임을 당한 금성단이 있다. 복위운동에 가담한 사람들도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당시 죽계천은 피로 물들었고 하류 쪽에 피가 멈췄다는 피끝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영주=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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