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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이용대의 나는 오늘도 산에 오른다] <6> 길 안든 명품 등산화 신고 선등 자청 임영옥 "나 떨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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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이용대의 나는 오늘도 산에 오른다] <6> 길 안든 명품 등산화 신고 선등 자청 임영옥 "나 떨어져요"

입력
2007.11.22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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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빛이 온 산에 스며든 1972년 늦가을. 나는 두 명의 후배와 함께 도봉산 주봉을 찾았다. 후배 임영옥은 등반에 대한 열정 이상으로 장비에도 집착을 보였다. 대학 재학 중인 그는 하숙비로 송금되는 ‘향토장학금’으로 고가의 장비를 사고 누나 집이나 친구 자취방을 기웃거리며 동가식서가숙하던, 산의 올가미에 단단히 걸려든 친구다. 그는 진한 전라도 사투리에 두주불사의 애주가였다.

그날 그는 내 한 달치 봉급을 몽탕 털어도 살 수 없는 고가의 스위스제 헹케(Henke) 등산화를 신고 나타났다. 당시로서는 구경조차 하기 어려운 명품이었다. 견고하기 이를 데 없어 대를 물려 신는다는 그 등산화는 뻣뻣한 갑피와 단단한 밑창 때문에 처음 신었을 때는 발목이 잘 구부러지지 않아 보행이 불편하고 무게 또한 만만치 않아 사람이 신발에 끌려 다닐 정도다.

“너, 그걸 신고 어떻게 바위 하려고 해?” “형. 히말라야 가려면 평소 이 정도는 신고 적응을 해야 길이 들지요.” 이러다 보니 로봇처럼 기우뚱거리며 걷는 그의 발걸음은 무거웠고 주봉에도 오후 3시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등산은 일찍 시작하고 일찍 끝내는 것이 불문율이지만 그날은 이를 묵살한 채 등반을 시작했다.

내가 선등을 하면서 삼단벽을 향해 올랐다. 오감을 자극하는 차가운 가을바위의 느낌에 기분이 상쾌했다. 우리는 이어 악명 높은 나팔 형태의 좁은 침니(chimneyㆍ몸이 들어갈 정도의 바위 틈) 밑에 도착했다. 임영옥이 선등을 자청했다. 그의 등산화 때문에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으나 그냥 맡겼다. 그는 하단의 폭 넓은 침니는 그런대로 올랐으나 위쪽 좁은 구간으로 진입한 뒤에는 투박한 등산화 때문에 발붙임 자리를 찾지 못한 채 허둥댔다.

잠시 후 “형. 나 떨어져요” 하면서 쏜살같이 추락했다. 아래에서 확보하던 이상기의 얼굴로 육중한 등산화의 충격이 전해졌다. “으윽! 하필이면 왜 얼굴을 덮치느냐”고 소리쳤지만 이상기의 안경은 박살 난 채 날아가 버렸다. 그는 안경 없이는 한치 앞을 분간 못하는 근시였다. 머쓱해진 임영옥은 “추락하는 사람이 어디를 조준하고 떨어지나요. 등산화 팔아 사드리겠습니다”고 응수했다.

자존심 상한 임영옥은 또 한번의 선등을 자청했으나 한번을 더 떨어진 후에 내게 선등을 맡겼다. 결국 내가 앞장서 좁은 침니를 통과하고 정상에 섰으나 짧은 가을 해는 기울고 칠흑 같은 어둠이 밀려왔다. 셋은 정상에서 쉴 틈도 없이 하강을 서둘렀다. 랜턴이 없었으니 우리는 맹인이나 다름 없었다. 밤 기온은 영하권으로 떨어졌고 눈 주변이 부어 오른 이상기는 불편이 특히 컸다.

내가 피톤(Piton)에 줄을 걸고 먼저 내려왔고 맨 마지막은 임영옥이었다. 다음 피치를 내려가기 위해 로프를 회수하려 했으나 요지부동이다. 사력을 다해 로프를 당겼지만 역부족이었다. 다음날 안 사실이지만 마지막 하강자가 피톤에 씌워 놓은 백업용 매듭을 벗기지 않은 채 내려오는 실수를 범했던 것이다. 그대로 바위에서 밤을 지새우자니 밤 바람과 한기에 노출돼 저체온증으로 동사할 것이 뻔했다.

내려갈 일이 막막해진 나는 하단벽 크랙(바위 틈새)을 로프를 쓰지 않고 내려오는 아슬아슬한 다운 클라이밍을 했고, 발목 깁스를 한 것처럼 육중한 등산화를 신은 임영옥과 앞을 볼 수 없는 이상기는 피톤에 슬링과 줄사다리를 연결해 잡고 내려왔다. 우리는 어둠을 헤치며 살려고 몸부림하면서 내려왔고 그날 밤 통금시간 직전에 가까스로 집에 도착했다.

그날 귀중한 교훈을 얻은 우리는 그 뒤 당일산행에서도 조명기구를 넣고 다녔다. 산에서는 사소한 장비라도 없으면 간혹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서 세심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등산은 책으로 읽은 지식을 체험으로 확인하는 과정이며, 살아서 돌아오는 것이 완성이다.

그러나 산꾼들에게 이런 약속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정상에 대한 지나친 열망 때문이다. 안전하게 등반하고 살아 돌아오기 위해서는 정상에 대한 집착을 기꺼이 접을 줄 알아야 한다. 등반이란 아주 힘겨운 그라운드에서 자신을 시험하고 한계를 끌어올리기 위함이지 죽고 사는 것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날 주봉에서 회수하지 못한 로프는 임영옥이 거금을 투자해 마련한, 당시로서는 구하기 어려운 유럽제품 마무트 로프였으니 이 친구 속이 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밤새 초조해 하다가 시험을 빼먹고 새벽 길을 더듬어 올라가 회수해왔다. 그는 이 사건(?)으로 한 학기를 유급하고 코스모스 졸업을 했다. 졸업 후 이 친구는 자신의 분신처럼 아끼던 장비를 팔아 도봉산 선인봉 벼랑에서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진 산 선배의 추모비를 마련하고 귀향했다.

그는 끝내 헹케 등산화를 신고 히말라야에 가보지 못한 채 산을 등졌다. 지금 그는 중소기업의 오너가 ?향리에서 문제 청소년 선도 사업에 전념하고 있다. 그가 제 몸처럼 아끼던 장비를 팔아 세운 추모비는 동료애의 징표처럼 아직도 도봉산 자락 양지바른 언덕에 그대로 서있다.

코오롱등산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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