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의 유연성을 확대할 것인가, 고용의 안정성을 강화할 것인가.’ 고용 문제의 해법을 놓고 벌어지는 노사 갈등의 핵심 쟁점이다. 사측인 경영계는 고용의 유연성 확대를 주장한다. 근로자의 해고 조건을 엄격하게 규정한 법규 등 고용 분야에서 기업을 과도하게 규제하는 법ㆍ제도들을 과감히 폐지해 기업이 자유롭게 사람을 채용하고 해고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그래야 고용시장이 활성화해 고용이 증가할 것이라는 논리다. 노동계는 그러나 “근로자의 고용 불안만 가중시킨다”며 고용의 유연성 확대를 위한 제도 도입을 강력하게 반대한다.
경영계를 대표하는 조직인 한국경영자총협회 김영배(51) 상임 부회장은 ‘고령자 고용 유연성 확대’를 절충안으로 내놓았다. 전체 근로자의 고용 유연성을 확대하면 노동계의 격렬한 반발을 살 것인 만큼 ‘50세 이상’ ‘근속 20년 이상’ 등 특정 근로자 집단에 한정해 고용의 유연성을 높이는 제도적 장치를 도입하자는 주장이다. 예컨대 특정 근로자 집단은 근로기준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김 부회장은 “기존 고용에 영향을 안 주면서 중ㆍ고령자들을 추가로 고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특정 연령 집단을 퇴직금 지급 대상이나 근로기준법 적용 예외자로 하면, 이들에 대한 고용 유연성이 커져 기업은 이들을 새로 고용하거나 계속 고용하는데 경영상 부담을 덜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중ㆍ고령자 재취업 문제는 일자리 분배가 아니라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정된 일자리를 놓고 젊은 층과 중ㆍ고령 층이 경쟁하는 구도에서는 재취업 문제를 절대 풀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나이 든 사람이 풍부한 경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기술 발전 속도에 적응 못하는 비생산적인 사람’으로 간주돼 일자리에서 쫓겨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고령화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중ㆍ고령자들이 생산 현장에 머물러 있느냐가 국가 부 창출의 중요한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중ㆍ고령자 재취업 촉진을 위한 기업의 역할 중 하나는 사내 전직(轉職) 프로그램 활성화다. 직원들이 회사에 다니면서 미리 퇴사 이후에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준비하도록 돕는 것이다.
선진국의 기업들은 체계적으로 전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의 전직 프로그램 지원은 매우 미흡한 형편이다. 한국전력 포스코 등 극히 일부 대기업에서만 하고 있다. 재직자들 역시 매달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이라는 마약에 중독된 채 퇴사 이후를 준비하지 않는다.
김 부회장은 “기업의 전직 지원 프로그램이 미흡한 것은 기업의 무관심과 함께 이런 프로그램에 대해 노조가 거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회사가 전직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하면 노조가 “구조조정의 전 단계”라며 도입을 반대한다는 설명이다. 근로자들이 ‘전직 프로그램 대상자=퇴출 후보자’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는 “노사분규의 씨앗이 될 수 있는데 어떤 기업이 도입하고 싶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전직이나 재취업을 위한 근로자 재교육의 부실은 퇴직자들의 ‘묻지마 창업’으로 이어진다. 재취업할 일자리가 부족한데다 퇴사 이후 ‘제2인생’에 대한 준비도 제대로 못한 탓에 퇴직금을 한꺼번에 쏟아 부어 자영업에 뛰어드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문을 닫고 만다. 김 부회장은 “국내 자영업자 비율은 무려 34%나 되고 이 중에 이익을 남기는 곳은 8%밖에 안 된다”며 “마땅한 전직 프로그램 하나 못 듣고 나온 퇴직자들의 창업은 대부분 실패로 끝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일부 대선 후보와 노동계가 주장하는 정년 연장에는 반대했다. 그는 “목욕탕을 가득 채운 물이 밑으로 빠지지 않으면 수도꼭지를 잠가야 하듯, 출구(퇴사)가 막히면 입구(입사)도 막히게 된다”며 “기업의 총 인력 수용 규모는 한정돼 있는데 정년을 연장하면 결과적으로 그 기간만큼 새 직원을 못 뽑아 청년 실업난을 더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부회장은 1986년 미국 조지아대 경제대학원에서 노동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04년 40대에 경총 상임 부회장이 됐다. 노사관계 등에서 명쾌한 논리로 재계의 입장을 밝히고 노동계를 조목조목 반박해 ‘재계의 입’ ‘싸움닭’으로 불린다.
김일환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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