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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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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입력
2007.11.1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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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易綱) 중국 인민은행장보는 8일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고 말했다. 중국 관료로서는 좀처럼 하지 않는 표현이어서 눈에 띄었다. 이강은 주식, 부동산 시장에서 국민들이 광적으로 돈을 추구하는 상황을 판도라 상자에 비유했다.

그의 표현처럼 중국인들은 재테크(투기) 광풍에 푹 빠져있다. 지난해 130% 상승한 중국 증시는 올해 들어서만 110% 더 오르며 중국인의 시선을 시세판에 고정시키고 있다. 증권계좌는 지난 여름 1억 개를 돌파했다. 최근 상하이 증시에 상장된 페트로차이나는 단박에 시가총액 세계 1위 기업에 올랐다.

■ 중국에 몰아치는 재테크 광풍

부동산 시장도 마찬가지이다. 베이징의 한국 기업 관계자는 “취업이 확정된 중국 신입 사원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집을 보러 다니는 것”이라고 전한다. 사흘이 멀다 하고 집값이 오르자 더 오르기 전에 집을 사야 한다는 조바심이 신입 사원들을 붙들고 있다.

2006년 한해 중국을 정리하는 한자로 주식 등에 ‘투자’한다는 의미를 지닌 차오(炒)가 선정됐는데 올해엔 이에 필적할 만한 한자는 없을 듯하다.

이런 현상은 국제적으로 중국 기업 등의 가치가 제값을 받기 시작하고 중국 국민의 가처분 소득이 축적됐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중국 전역이 재테크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상황은 간단치 않다.

홍콩의 인터넷 신문 아시아타임스의 정치평론가 우종은 이런 현상에 대해 독특한 해석을 내놓았다. 그는 “중국인에게 주식은 경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 중국 주식 투자자들은 인터넷상에서“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주식시장에서만큼은 자유를 느끼고 법치와 민주주의를 만끽한다”고 토로한다. 우종은 불확실성과 불법을 배제하려는 속성을 지닌 주식시장이 참여자들의 결정권을 존중하고 소액 투자자들을 대우함으로써 민주주의를 간접 체험하도록 한다고 말한다. 7,300만명의 공산당원보다 많은 중산층들이 주식 시장에서 이런 경험을 한다는 것은 중국 정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중국 공산당도 주식시장의 정치적 민감성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지난달 17차 공산당 대회에서 “실질 소득을 높여주겠다”고 이례적으로 언급했다.

■ 천안문 사태 이상의 흔적 남길 듯

자산 시장의 팽창은 여러 상황을 불러올 수 있다. 시장이 경착륙 없이 팽창할 경우 시장에 참여하지 못한 이들의 상대적 빈곤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현재 지니계수(소득불평등지수)가 0.496으로 위험 상태인 빈부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경착륙 한다면 그 결과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관측통들은 “종착역 없이 2년 이상 이어지고 있는 현 열풍의 결과가 어떻든 1989년의 천안문 사태 이상으로 중국 사회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본다. 중국 주식시장은 천안문 사태가 발발한 다음해인 1990년 열렸다.

4년째 10%이상의 고성장을 구가하면서 유동성 과잉에 시달리는 중국은 이제 고성장과 경기과열의 점이지대에서 경제를 운용해야 할 상황을 맞았다.경기과열 속에서 자산시장의 거품을 제거해야 하나는 난제를 짊어진 것이다.

신화에서 판도라 상자가 열린 직후 온갖 재앙과 죄악은 빠져나갔지만 희망만은 빠져 나오지 못했다. 중국은 희망을 건져 올리기 위해 신화보다 어려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이영섭 베이징 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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