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 대기획의 일곱번째 ‘한반도 평화정착’ 토론에서 중도보수의 고려대 남성욱 교수, 중도진보의 동국대 박순성 교수 모두 남북경협의 지나친 확장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며 단계적 확대론을 펼쳤다.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인 박 교수는 “남북경협은 남북관계의 중요한 고리이며 이를 통해 우리 국민도 알게 모르게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평가했지만 “10ㆍ4 남북정상선언에 제시된 것처럼 경협이 지나치게 확대되는 데는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우선 개성공단에 역량을 집중, 3통(통신 통행 통관) 문제나 노동력 공급 문제를 해결하면 자연 해주특구 등으로 확대 발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남 교수는 “남북경협으로 돈을 벌겠다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며 남북관계의 연구개발비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면서 “기업이 대북투자에 대해 알아서 판단하도록 해야지 정부가 무리하게 확장하도록 호도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김정일 위원장이 상하이를 방문했고 김영일 총리가 베트남을 보고 왔지만 북한은 그 결과를 현실에 접목하지 않고 있다”면서 “처음에는 경제특구로 시작, 하나 하나 확대하는 점선면 전략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0년간 정부가 취해온 대북 포용정책에 대해선 두 토론자의 의견이 갈렸다. 남 교수는 “포용정책이 초기에 북한의 문을 여는 데는 기여했다”면서도 “그러나 이후 북한의 핵실험, 주기만 하고 받지 못하는 관계 등으로 균형적 남북관계를 무너뜨렸기 때문에 일부 수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압박으로 1994년 1차 핵 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전개됐지만 국민들은 전쟁위험을 덜 느낀 것이 포용정책의 성과”라며 “정부는 포용정책의 일관성을 유지, 한반도 정세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에 대해서도 편차는 컸다. 남 교수는 “NLL은 통일되는 날까지 손대지 말고 그것을 인정하는 선에서 공동어로를 모색하는 형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고 박 교수는 “NLL을 평화지대나 비무장지대로 이용한다면 장차 휴전선(DMZ)를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선례가 될 것”이라며 실용적 해결론을 강조했다.
이영성 기자 leeys@hk.co.kr
■ 남성욱 vs 박순성
시대정신 대기획의 일곱번째 토론은 아까웠다. 남성욱, 박순성 교수가 논리의 근거로 제시한 역사적 사례들과 구체적 통계를 지면의 제약으로 상당부분 빼야 했기 때문이다. 4개 면을 펼쳐도 될만한 내용의 토론을 벌인 두 교수는 토론 후에도 전화통화를 통해 통계자료와 설명을 보정하는 정성을 보였다.
_본질부터 다뤄보겠습니다. 통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뤄야 할 당위인지, 아니면 남북이 평화롭게 번영하면서 살면 되는 것인지 말씀해주시지요.
남성욱 교수= 통일의 당위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국민은 많지 않습니다만 통일이 어떤 조건, 어떤 합의 하에 이루어지느냐가 문제라고 봅니다.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1만8,000달러의 중진국이고 경제적으로 중국, 일본에 낀 샌드위치 상태입니다. 북한은 국민소득 1,000달러에 불과합니다. 한국이나 북한 모두 좀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북한 국민소득 3,000달러가 되는 시점을 매우 중시합니다. 한국은 국민소득 3,000달러를 돌파한 1987년 컬러TV, 냉장고가 보급됐고 민주화에 대한 시대적 합의가 있었습니다. 북한이 3,000달러가 됐을 때 통일을 논하는 게 후유증을 빨리 극복하고 우리의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다른 측면의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헬무트 콜 당시 총리는 본에 있지 않고 30억 달러를 들고 모스크바에 가서 탱크를 보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독일 외무장관도 프랑스 영국 미국을 찾아가 "통일독일이 주변에 절대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설득했습니다. 우리도 분단의 원인 80%가 4강에 둘러싸인 국제정치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어느 한 국가라도 반대할 경우 어려움에 직면할 것입니다. '우리민족끼리'라는 감정적 측면과 국제정치적 측면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좁히느냐가 통일의 관건이 될 것입니다.
박순성 교수= 지금 우리 사회에는 통일지상주의와 평화공존으로 충분하지 않느냐는 입장 사이에 갈등이 있습니다. 민족주의나 공동체의식, 평화공존 사이에 모순이 있는 것이지요. 특히 민족주의나 공동체주의가 평화의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불안은 우리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통일 없는 평화공존이 가능하냐는 거죠. 통일과 평화공존이 이론적으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불가분의 관계이고 통일은 평화공존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1980년대 당시 양 극단의 사고가 있었지만 지금은 국민의 70, 80%가 평화와 통일을 분리시키지 않고 점진적 통일을 찬성한다고 봅니다.
_논의를 좀더 진전시켜 한반도 미래와 미래 한국의 모습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남= 싫든 좋든 양적 성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3만 달러를 넘어서야만 북한을 충분히 도울 수 있는데 북한이 '우리 민족끼리'라는 코드로 발목을 잡는다면 한반도 전체가 죽습니다. 유럽에서 강소국 개념이 나오지만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우리는 이 정도 국력으로 한반도를 지킬 수 없습니다. 최소한 3만 달러 시대에 GNP 1%만 투자해도 문제 없는 수준까지 가야 합니다. 양적 경제성장에 의한 통일한국의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박= 우리 국력을 정확히 평가하고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 듭니다. 우리는 이제 어느 정도 스스로 외교정책이나 경제발전 전략을 짤 수 있는 수준에 있다고 봅니다. 또한 단순히 양적 성장을 이룬다 해서 우리 사회의 미래가 밝다거나 북한을 우리가 끌어낼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국가정체성에 대해 어떤 가치를 지향할 것이냐는 고민을 해야 힘을 올바로 쓸 수 있습니다. 유럽의 강소국들이 나름대로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면 우리도 중국, 일본 사이에서 중간국가로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샌드위치를 벗어나기 위해 양적 성장을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평화적으로 북한을 끌어내고 4강의 패권경쟁에서 전략적 거리두기를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고민은 동북아에서 미국중심의 패권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라는 데서 생깁니다. 미국은 2001년 이후 일방주의적 세계전략과 강한 군사력에 대한 과도한 믿음 때문에 오히려 지도국 역할이 약화된 반면에 중국은 올라오고 있습니다. 동북아 패권질서 변화에 대한 고민을 지금부터 해야 합니다.
_성장논쟁으로 넘어가면 끝이 없어지니 지난 10년의 주요 정책 중 하나인 대북포용정책에 초점을 맞춰 논의해주시지요.
남= 10년간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문을 여는데 성공했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문을 여는 열쇠로서 타당했지만 추진과정에 여러 문제가 파생했습니다.
우선 핵실험입니다. 핵무기를 막지 못한 대북정책은 결론적으로 실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재래식무기에다 한미 군사동맹으로 균형을 추진해 왔는데 핵실험으로 균형 구도가 깨진 셈입니다. 두 번째로 김대중 정부 시절 추진한 '선공후득(先供後得)'정책은 길이 잘못 들었습니다. '주면서 뺨 맞았다'는 것이지요. 민족간에 무슨 대단한 문제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주권국가로서 나쁜 선례를 남긴 겁니다. 대북지원론자들은 북한을 너무 잘 이해해서 북한의 아픈 문제를 다루는 것을 스스로 자제해왔습니다. 인권은 차치하더라도 납북자, 국군포로 등에도 너무 소극적이었습니다. 대북정책의 일부 수정이 필요합니다.
박= 북한 핵실험을 대북 포용정책이 초래했다는 것은 적절한 평가가 아닙니다. 북핵 문제는 남북 차원이 아닌 미국과 핵 비확산이라는 국제적 차원에서 봐야 합니다. 포용정책이 상황을 악화시켰다기보다는 미 부시 행정부의 대북 압박정책으로 인한 급박한 상황악화를 제어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1차(1994년) 북핵 위기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 왔지만 국민들이 전쟁위험을 덜 느꼈던 것도 포용정책의 성과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70년대 통일을 고민하자고 했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북방정책이라는 적극적 포용정책을 폈습니다. 김영삼 정부도 초기에 민족이 동맹보다 우선한다고 했습니다. 김영삼 정부는 후기에 '핵을 가진 북한과는 손을 잡을 수 없다'며 협상을 중단했는데 이로 인해 한반도 문제의 발언권을 잃었습니다. 우리가 참여하지 못한 상태에서 북미간 제네바 핵동결 합의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김대중 정부 이후 포용정책이 재가동되면서 한국의 발언권이 높아졌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대북포용정책을 이어받았지만 두 가지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우선 지속적이지 못한 한계가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남북문제에서 정경 분리를 했지만 노무현 정부는 초기에 정경분리도 아니고 연계도 아닌 그 중간에서 흔들렸습니다. 대북송금 특검도 그런 예라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일관성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노 정부는 초기에 지나친 반미정서를 내세웠기 때문에 후반에 미국에 전략적 유연성, 이라크파병 등 많이 주는 전략을 택해 일관성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미국의 일방적 군사노선을 적절히 견제하면서 세계와 북한, 우리 국민에게 평화노선에 대한 일관된 메시지를 던져줬어야 했습니다.
남= 노무현 대통령은 보수, 진보 어느 쪽에서도 지지를 받지 못해 섭섭할 것 같습니다. 포용정책은 인게이지먼트(Engagement)를 번역한 것인데 부정확한 측면이 있습니다. 일본은 관여라고 합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은 인게이지먼트, 공화당은 고립(Isolation)정책을 썼는데 미국의 대외전쟁은 민주당 때 많이 일어났습니다. 채찍과 당근이 인게이지먼트의 기본이라 그렇습니다.
대북정책에서 등가적 상호주의, 동시적 상호주의를 주장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앞에 주고 나중에 얻는 게 예측 가능해야 됩니다. 선공후득의 문제입니다. 쌀 30만톤, 비료 40만톤은 북한 쌀 소비량의 20%로 엄청난 양인데 그걸 주면 북한도 인도적 측면에서 호응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산상봉이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전부입니다. 북한이 싫어하면 안 하는 게 10년간의 정책이었습니다. 북한이 반응을 보이도록 정책을 추진했어야지요. 이제 10년간의 기형적 정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_우리가 그런 요구를 연계시키면 북한은 거칠게 반응, 긴장을 조성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 경우 냉각기를 갖자는 말씀인지요.
남= 2년 전 한 세미나에서 유엔의 대북인권결의안에 대해서 우리가 왜 기권하느냐고 외교부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남북관계가 10년 후퇴한다"고 답했습니다. 지난해 우리가 유엔 인권결의안에 찬성했을 때 남북관계는 후퇴하지 않았습니다. 남북관계는 이제 후퇴할 구조가 아닙니다.
박= 남북관계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씀은 포용정책의 성과를 인정하는 것인데 한편으로 기형적이라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북한도 반성할 부분이 있습니다. 2000년 당시 남한관계가 개선되면서 클린턴 행정부와도 관계개선이 되고 그 해 10월 북미 공동커뮤니케가 나왔습니다. 남북관계 중심으로 한반도 위기를 극복하자는 포용정책의 의미가 잘 살려진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계속 나아가야 하는데 움츠렸습니다.
이후 부시 행정부의 세계전략과 대북압박정책은 북한에 공포심을 유발했고 북한은 개방 대신 군사노선으로 대응했습니다. 북한의 군사노선과 미국의 강경노선 부딪쳤기 때문에 남북한과 미국 모두 5년을 잃었습니다. 당시 군사주의 노선은 북한 지도부의 판단 잘못도 있습니다만 환경을 바꿔주지 않은 측면도 있습니다. 북한은 지금 군사노선을 포기하는 중입니다. 이런 점을 보면 노태우 전 대통령도 북방정책을 주도적으로 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페리 보고서 작성 때 미국 유럽 등을 설득, 주도권을 발휘했으나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역량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_이런 논쟁의 핵심에는 북핵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과연 북한이 핵실험에서 성공했는지, 逑?문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진단해주시지요.
남= 북핵 문제는 기본적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 핵의 문제입니다. 현재 핵 문제인 영변 핵 시설은 중단 상태에 있습니다. 과거 문제로 핵 무기를 몇 개 가지고 있느냐는 국정원, CIA 등의 여러 분석이 있는데 조잡한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핵을 탄두로 나를 수 있느냐는 소형화 기술보유 여부가 핵심인데 불완전한 측면이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핵무기를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에 있습니다. 농축우라늄 같은 미래 핵 문제는 당면 위협은 아닙니다.
현재 북핵은 불능화 단계에 와 있지만 금년에는 실현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북미가 주고받을 카드에 대해 동상이몽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불능화의 반대급부로 테러지원국 지정해제와 적성국교역법 적용 중지를 다 얻어내야 된다고 생각하고 플러스 알파로 경제지원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미국은 다음 얘기라는 것이지요. 불능화는 100만톤 중유제공으로 끝났고 기존 핵무기의 신고ㆍ폐기 카드로서 나머지 카드를 활용하겠다는 생각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평양은 지금 좋은 외교적 조건을 갖고 있어 미국의 시나리오대로 가지 않을 겁니다. 내년 4, 5월에 다시 위기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그 때 양측 요구가 충돌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미국의 카드를 수용할 수 없다고 여길 때 핵실험 장소인 함경도에서 차량을 왔다갔다하게 하는 제스처를 취할 수 있습니다. 내년 봄은 미국의 대선레이스가 시작되고 부시 대통령의 레임덕이 본격화됩니다. 남한의 새 정부는 시작부터 북핵 문제로 시달리기는 괴로운 일이라 북한은 꽃놀이패로 게임을 시작할 시기라는 것입니다. 내년 8월 베이징 올림픽이 있는 중국도 압박카드를 쓰기 어려운 입장입니다.
박= 북핵 위기가 다시 올 경우 쉽게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막아야 하고 김 위원장 등 북한 수뇌부는 지나친 욕심을 내서는 안 됩니다. 내년 미국의 대선정국에서 공화당 정부가 북한의 압박을 받을 경우 계속 평화적으로 갈지는 의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은 불능화를 가능한 빨리 매듭짓고 단계적으로 얻어가는 게 중요합니다.
90년대 이후 북한의 외교안보적 행동은 한국, 미국의 행동에 대응하는 형태였습니다. 한반도에서 미군의 전술 핵 철수를 받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하는 등 한미의 행동에 따라 반응을 했다는 것이죠. 이는 북한이 세력불균형 상태에서 경제, 군사적 열세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만 지금 상황에서 북한이 불능화 카드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거나 남 교수님의 지적처럼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오산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_종전선언을 둘러싸고 말이 많습니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상은 어떻게 진전시키는 게 좋겠습니까.
박= 1990년대 중반같이 남북관계가 덜 진전되고 북미관계가 좋지 않았을 때 4자 회담은 좋은 수단이었습니다. 한국도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할 때였죠. 지금은 남북관계가 좋아 남한이 외교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사고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평화협정으로 바로 가기보다는 종전선언을 먼저 하고 남북기본합의서에 나와 있는 군사공동위원회로 종전상황을 관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우리 정부는 남북경협에서 유연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금은 미군이나 유엔사령부의 협력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서 종전선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평화협정은 간격을 두고 동북아 평화안보와 함께 가는 게 실용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4개국 평화협정에 너무 얽매이지 말자는 것이지요.
남= 종전선언에 대해 정부 내에서도 컨센서스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핵심은 종전선언이 결과일 수밖에 없지 추동력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파리평화선언 등 과거 수많은 평화선언이 있었지만 평화를 담보하지 못했습니다. 종전선언은 핵 폐기의 상당한 진전 있을 때 자연스런 결과로 도출돼야지 종전선언이 핵 폐기를 이끌어낸다는 주장은 결혼한 부부에게 아이가 커서 뭐가 될까를 논의하는 것과 같습니다.
박= 종전선언을 위해서는 핵 문제와 북미관계의 적절한 진전이 있어야 하겠지요. 아까 말한 것은 미국, 중국이 참여하는 평화협정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이를 미루는 대신 종전선언으로 정전상태를 끝내자는 것입니다.
_남북관계의 또 다른 포인트는 경협입니다. 남북경협에 대한 평가와 향후 어떻게 진행돼야 할 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박= 남북경협은 남북관계의 중요한 고리이며 이를 통해 우리 국민은 평화를 알게 모르게 누리고 있습니다. ‘주고 못 받지 않느냐’는 비판도 있고 개별기업의 낮은 수익성에 대한 비판도 있습니다. 하지만 벤처기업의 성공률을 8%로 볼 때 그 수준보다 조금 낮은 정도이고 개성공단 입주기업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물론 한계도 있습니다. 3통이나 노동력 공급문제 등은 여전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10.4 정상선언에 제시된 것처럼 경협의 지나친 확대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개성공단 하나를 잘 성공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개성공단에 역량을 집중시켜 3통이나 노동력 문제를 해결하면 자연히 해주 등으로 확대될 것입니다.
남= 남북경협을 남북관계의 연구개발비용 정도로 생각합니다. 다만 정부가 기업들이 알아서 할 일을 무리하게 확장하도록 호도해서는 안됩니다. 저임금, 저토지 비용을 제공하고 선진국 자본으로 제품을 만들어 파는 게 후진국의 경제개발 로드맵 입니다. 북한이 그 길을 밟으면 남북경협이 기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김정일 위원장이 개혁, 개방을 말하지 말라는 걸 듣고 15년은 더 걸리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상하이를 방문해서 천지개벽을 이야기 했고 김영일 총리가 최근 베트남 보고 왔습니다. 이를 접목시켜야 합니다. 북한판 모델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_개성공단이 들어서면서 북한의 군단이 철수했습니다. 해주 근처에 북한 해군사령부가 있는데 서해평화특별지대도 긴장완화의 모티브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박= 서해평화특별지대는 서해지역의 군사긴장을 어떻게 완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나온 우회 전략입니다. 이를 통해 서해 북방한계선(NLL)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가 초점일 것 같습니다. 북한이 서해평화특별지대를 수용한 것은 서해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재배치 용기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도 호응해야지요. 사실 공동어로구역화는 80년 국토통일원 장관이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NLL을 헌법이나 영토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지나치게 이론적입니다. NLL을 평화지대나 비무장지대로 이용한다면 장차 휴전선(DMZ)지역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선례도 됩니다.
남= 노 대통령이 DMZ에서 GP를 철수하자는 제안을 했는데 김정일 위원장은 시기상조라고 거부하고 NLL은 받았습니다. 평화적으로 지내자는 개념을 살리고 싶으면 NLL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아야 합니다. NLL은 치열한 한국전쟁의 결과입니다. 남한 땅이었던 개성이 북한에 넘어간 것처럼 NLL은 서해 모든 도서에서 북한 해군이 무너진 결과입니다. 이는 해상의 경계선으로서 통일되는 날까지 건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NLL을 인정하는 선에서 평화적 공동어로 형식으로만 접근해야 합니다.
박=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사업은 한국전쟁의 결과를 타파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공동어로구역도 평화적으로 한국전쟁의 결과를 타파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남= 개성공단, 금강산사업으로 휴전선이 무너진 게 아닙니다. 휴전선을 유지하는 선상에서 사업을 하는 겁니다. 문제 푸는 방식을 찾아야지 해상경계선 무너뜨리는 개념으로 가면 안 됩니다.
_마지막으로 북한의 급변 사태 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박= 이에 대한 공개적 논의는 북한뿐 아니라 미 중 일 러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현명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전략은 세워놓아야 합니다. 전략0수립 때 국제현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급변사태 시 한국이 통제권을 발휘할 수 없고 4강과 유엔의 개입이 필연적일 것입니다. 이런 개입을 사전에 막을 방법은 유일하게 남북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남북기본합의서 대로 남북이 통일을 지향한다는 점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남= 급변사태에 대해 일반적으로 김정일 유고에 이어 남한이 북한에 들어가고 통일로 이어진다는 도식적 논리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평양의 중국대사관은 주한 미국대사관의 4, 5배 규모로 인적 네크워크는 평양의 모든 일들을 리얼타임으로 체크합니다. 중국 단둥에는 10만 명의 동북구 사령부가 있는데 평양까지 오는데 4, 5시간 걸립니다. 과연 혼란이 났을 때 우리가 개입할 여지가 있겠느냐는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신세가 될 수 있습니다. 차기 정부가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합니다.
사회=이영성 부국장 정리=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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