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화약고’ 발칸반도가 다시 들끓고 있다. 세르비아 내 코소보의 독립 움직임에 대한 맞대응으로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도 독립을 추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미 민족간 분리 독립 시도로 1990년대 최악의 내전을 겪었던 이 두 지역에서 유혈 충돌의 악몽이 재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다.
코소보의 최종 지위에 관한 협상 시한인 다음달 10일을 앞두고 서방과 러시아ㆍ세르비아간 국제적 힘겨루기가 벌어지는 사이 인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역시 정치적 위기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고 있다. 올 2월부터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이끌어왔던 세르비아계인 니콜라 스피리치 총리가 미로슬라브 라이차크 국제 특사에 반발해 최근 사퇴, 중앙정부 내각이 사실상 마비 상태다. 라이차크 특사가 추진하는 정부 개혁안이 자치 정부의 자치권을 훼손한다는 이유에서다.
세르비아, 무슬림, 크로아티아 등 3개 세력간 갈등으로 격렬한 내전을 치렀던 보스니아는 1995년 데이튼 평화협정을 통해 이슬람-크로아티아계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연방’과 세르비아계인 ‘스르프스카공화국’, 두 자치 공화국으로 양분됐고 국제 특사가 파견돼 중앙정부의 관리 역할을 맡고 있다. 라이차크 특사는 최근 보스니아의 유럽연합(EU) 가입을 위해 통합경찰 창설 등 중앙정부의 권한 강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세르비아측은 라이차크 특사가 개혁안을 밀어 부칠 경우 아예 중앙정부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자치권을 둘러싼 이 같은 갈등 이면에는 세르비아 내 코소보 독립 문제가 연계돼 있어 발칸 반도 전체를 둘러싼 각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는 양상이다. 코소보는 알바니아계 주민이 다수로 1998년 세르비아와 알바니아계 간 내전을 거쳐 지금은 유엔의 관리 감독 하에 놓여 있다. 미국과 유럽은 코소보의 독립을 지지하고 있으나 세르비아와 러시아가 반발해 코소보 협상이 지지 부진한 상태에서 알바니아계는 협상 결과에 관계없이 다음달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할 태세다.
보스니아의 최근 갈등에는 결국 코소보가 세르비아로부터 독립할 경우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도 같은 논리로 독립하겠다는 배경이 깔려 있다. 이를 부추기고 있는 세르비아로선 코소보 상실의 대가로 보스니아 지역을 얻겠다는 심산이다. 유럽의 한 외교관은 “코소보가 독립을 선언하면, 스르프스카공화국도 곧바로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에 들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독립 선언은 또 다시 민족간 분쟁으로 격화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보스니아 내전(1992~1995년)과 코소보 내전(1998년) 역시 이들의 분리 독립 움직임으로 촉발됐던 것으로 잔인한 인종청소 등으로 10만명 이상이 숨지는 참상을 겪었다. 외교 전문가들은 서방이 코소보 독립에 매진하고 있지만 보스니아 문제가 유럽사회에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국제 위기 그룹의 제임스 리온 상임 고문은 “보스니아의 미래가 매우 불안하다”며 “1992년 이후 변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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