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권 국가보훈처 차장이 자신을 공무 수행 중 상해를 입은 공상(公傷) 공무원으로 조작, 국가유공자 혜택을 누린 사실이 감사원에 적발됐다.
정권 말기에 잇따라 드러나는 여느 권력형 비리에 비하면 그야말로 치사 졸렬한 짓으로 볼 만하다. 그러나 권력을 빙자해 막대한 이권과 뇌물을 주고받은 비리보다 오히려 한심하고 개탄스럽다. 국가 공조직, 특히 고위 공직자들의 기강과 윤리가 어디까지 추락했기에 이처럼 파렴치한 비리를 스스럼없이 저지를 수 있었을까 싶다.
정씨의 비리는 언뜻 공직자의 기초 덕목을 외면한 개인적 탐욕에서 비롯된 것으로 비친다. 그는 오래 전 사무실 책상을 옮기다 디스크 증세가 악화했다며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 공상 요양승인 을 신청했으나 업무 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그러나 국가유공자 자격심사를 맡은 보훈관리국장을 지낸 직후, 공상 유공자 등록을 신청해 자격을 얻었다. 이에 따라 자녀들의 학자금을 지원 받은 데 이어, 고용명령 제도를 이용해 공기업 등에 취업시켰다.
문제는 이런 몰염치한 짓이 보훈처 조직의 도움 없이 불가능한 데 있다. 국가유공자 자격심사는 원래 연금관리공단의 공상 승인 심사보다 훨씬 까다롭다. 이를 쉽게 통과한 것은 조직의 아래 위를 가림 없이 국가유공자 자격을 ‘고양이에 맡긴 생선’ 정도로 여긴 증거이다. 보훈처 간부의 이름이 버젓이 오르지 않은 다른 유공자 등록신청은 얼마나 공정하게 심사했을지 의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 정부 들어 애국지사와 전몰ㆍ전상 군경, 순직ㆍ공상 공무원을 비롯한 국가유공자와 유족을 돌보는 보훈정책을 강화하면서 부작용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오랜 세월 소홀했던 국가유공자 보훈에 힘을 쏟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온갖 무리한 명분을 내세워 보훈대상 지정을 요구하는 단체와 유공자 등록전문 브로커가 설치는 가운데, 보훈처의 유공자 심사가 허술하고 정실이 작용한다는 뒷말이 많았다. 정씨는 이런 보훈 행정의 난맥상을 몸소 입증했다. 보훈처 조직의 일대 수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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