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ㆍ신한ㆍ하나 등 금융지주회사들은 최근 계열사를 통한 서민금융 진출을 꿈꾸고 있다. 기술적인 어려움이 없어 조만간 가시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런데 막상 추진 상황을 들여다보면 '아직 검토단계''결정된 것 없음''도상훈련'이 고작이다. 저마다 '리딩 뱅크'의 기치를 내걸 만큼 선제공격을 미덕으로 여기는 은행들이 망설이는 이유는 뭘까?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1일 "대부업체보다 낮은 금리로 양질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업계 최초로 서민금융시장 진출을 공식 천명했다.
신용이 낮아 은행문턱을 넘기 힘들었던 서민을 돕는다는 명분과 수익 증대라는 실리까지 챙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그러나 이날 민주노동당은'국민은행은 고리대금 장사를 하지 말라'는 반박 논평을 냈다.
시중은행이 서민금융 진출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순이자마진(NIM) 하락 등 수익성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은행 입장에서 서민금융은 일종의 돌파구다.
예대(예금과 대출) 마진과 각종 수수료로 앉아서 돈을 번다는 비난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고 있는 마당에 돈 되는 장사를 굳이 마다할 리 없다. 잘만하면 금융소외계층을 지원한다는 대의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게다가 정부도 열심히 등을 떠밀고 있다. 지난해부터 금융감독 당국은 은행에 소액 신용대출(서민금융)시장 진출을 권유했다. 지난달엔 김용덕 금융감독위원장이 공개적인 촉구까지 했다.
당국 입장에선 대부업체보다 신용평가능력이 좋고 추심행위도 점잖을 것 같은 은행이 서민금융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게 어쨌든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시중은행의 진척상황은 더디다 못해 소극적이다. 국민은행은 수장의 선언에도 불구하고"먼저 하는 것보다 제대로 하는 게 최선"이라며 일러야 내년 상반기로 미루고 있다.
금융지주회사의 경우 통합 카드사(신한+LG)를 출범시킨 신한은 LG카드의 서민금융 부문을 신한캐피탈에 넘기는 식으로, 우리는 한미캐피탈(현 우리파이낸셜) 인수로, 하나는 하나캐피탈을 통한 서민금융 상품 개발로 가닥을 잡았지만 역시 시기는 미정이거나 이르면 내년이다.
새로운 수익원이 될 수도 있는 서민금융이'계륵'(鷄肋)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셈이다. 은행들은 "실제 수익이 날지 사업성 검토가 필요하다""시장이 달라 개인신용평가시스템(CSS)을 변환해야 한다""정부가 원해서 한다 쳐도 부실이라도 나면 책임은 고스란히 은행 몫이다" 등을 현실적으로 걱정하고 있다.
정작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은행마저 고리대금업, 사채업에 나선다는 비난 여론 때문이다. 국민뿐 아니라 계열사를 통해 사업을 추진 중인 우리ㆍ신한ㆍ하나 등 금융지주회사 역시 그룹의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는 은행의 평판을 깎아 내릴 수 있는 '평판 리스크'를 해소하지 않는 한 서민금융은 계륵일 수밖에 없다. 은행 관계자는 "(서민금융이) 매력적인 시장인 건 맞지만 여론이 무섭다"고 털어놓았다.
시민단체 등 여론의 시선은 아직 곱지 않다. 송태경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정책실장은 "이자 40~50%도 터무니없지만 시중은행이 추진중인 20~30% 금리도 소득과 신용이 낮은 서민에겐 감당하지 못할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은행의 서민금융 진출이 사채 이용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일시적으론 하겠지만 현재 사채를 쓰는 이들의 40% 가까이가 은행 빚을 갚기 위한 목적임을 감안하면 결국 다시 사채를 쓰게 되는 악순환 구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중은행이 고리대금업에 나서면 1인 시위 등 사회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는 여론이 잦아들지 않는 한 서민금융 분야에서 시장을 선도하는'리딩 뱅크'는 당분간 나타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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