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세자리 숫자 시대가 목전에 다가왔다.
7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중질유(WTI)는 배럴당 96.37달러에 거래가 끝났지만 장중 한때 98.62달러를 기록해 1983년 원유선물거래가 시작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가가 급등하면서 에너지발 인플레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고, 원유공급선을 확보하려는 대국간의 치열한 경쟁은 자원 흐름의 왜곡은 물론 국제정치의 지형도마저 바꾸고 있다.
원유가 집중 매장돼 있는 중동과 러시아, 북아프리카의 정치권력은 치솟는 원유수입을 독재권력을 강화하는 방편으로 삼고 있어 국제사회의 또 다른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
(1) 중동이 여전히 비중 높아
지난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미국이 불안정한 국가의 석유에 중독돼 있다"면서 "중동지역의 원유수입을 줄여 이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부시 대통령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7일 세계 주요에너지 소비국들의 모임인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의 원유시장은 중동지역의 불안정한 정세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2030년 비(非)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원유생산은 하루 400만배럴(7%)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중국과 인도가 원유의 대부분을 중동에서 조달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국은 전체 원유의 45%를, 인도는 무려 3분의 2 이상을 중동권에서 수입하고 있다.
중동에 대한 원유의존도가 높아지면서 OPEC은 막강한 위력을 되찾고 있다.
원유의 수요와 공급 사이의 완충장치가 사라진 상태에서 OPEC 회원국들의 움직임은 하나하나가 국제 원유시장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중동 지역의 정치 불안정성 때문에 국제유가의 변동성은 더욱 커졌다.
유가가 100달러에 근접한 데는 9월 이스라엘군의 시리아 핵시설 공습, 터키와 쿠르드반군의 국경 유혈충돌, 이란 핵프로그램을 둘러싼 이란과 서방의 대치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알 카에다 등 테러조직이 사우디 아라비아 등의 정유시설에 대한 테러를 끊임없이 노리는 것도 세계경제의 중동변수를 높이는 요인이다.
(2) 자원 부국과 빈국 희비 엇갈려
중국과 인도는 유가 급등을 몰고 온 제1의 책임자이자 또한 최대 피해국이다. 중국 전역의 주요소는 석유재고 부족으로 기름을 넣으려는 차량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이 달 1일부터 기름 소매가를 10% 인상했지만, 석유경색이 풀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석유소비는 중국의 3분의 1 정도지만 70%를 수입에 의존하는 인도는 더 심각하다.
울고 있는 중국, 인도와 달리 중동, 러시아, 베네수엘라, 노르웨이 등 산유국들은 희색이 만면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독재라는 비판에도 불구, 천문학적인 원유수입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세계 10위 생산국인 노르웨이는 석유기금이 3,500억 달러로 크게 늘어나자 올해 유치원 보조금을 33억 달러로 늘렸다. 러시아 노르웨이 등이 투자한 국부펀드 SWF는 5개월 전만해도 존재가 미미했으나 지금은 세계 경제의 가장 강력한 투자펀드로 자리잡았다.
산유국들과 연줄을 대려는 원유 소비국들의 경쟁도 이전투구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천문학적인 원유수입과 외국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투자를 주체하지 못하는 중동과 아프리카의 정부는 이를 독재 권력 강화에 쓰느라 혈안이다.
올해 초 OPEC에 가입한 앙골라는 3년전보다 2배 반이 넘는 수입을 올렸으나 국민의 3명 중 2명은 2002년과 마찬가지로 하루 2달러 미만의 극빈층 생활을 하고 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무료 의료정책, 무상 교육, 식료품 값 인하 등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국제투명성기구(TI)의 올해 부패 지수에서 베네수엘라는 179개국 중 162위를 기록했다.
(3) 고유가, 세계적 인플레이션의 뇌관
유가급등을 초조하게 지켜보는 이유 중 하나는 이것이 전 세계 인플레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IEA는 "현재의 원유 수급 경색이 2015년까지도 풀리지 않을 수 있다"며 이 경우 세계 에너지 시장 시스템이 붕괴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전망을 내놓았다. 현재 추세라면 2030년에는 유가가 160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식품, 곡물가를 통한 세계 물가 앙등을 경고했다.
올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곡물가격이 내년에도 상승세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식료품 가격의 연쇄 가격 상승은 불가피하다.
인플레에는 연일 추락하는 달러 가치도 한몫을 하고 있다. 중국이 이런 추세에 불을 당겼다. 1조 4,30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고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미국 국채에서 영국 파운드, 유로화 등으로 다변화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입장이 나오면서 미국 달러화는 연일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이날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는 사상 최저치인 유로당 1.4731까지 추락했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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