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증권금융 이두형(55) 사장은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산행을 하지 않으면 심신이 불편할 정도의 산 마니아다. 지리산 설악산 치악산 등 이름난 산은 말할 것도 없고 축령산 운악산 지리망산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산까지 대부분 섭렵했다.
공직 생활을 시작하면서 산을 탔으니 올해로 꼭 29년째다. 그에게 산은 단순한 운동ㆍ휴식 공간이 아니라 삶의 지혜를 주는 '멘토'다. 산행을 통해 얻는 지혜는 경영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그는 지난해 11월 공직생활을 마치고 한국증권금융 사장으로 취임했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이제까지 한번도 타보지 않은 자본시장통합법이라는 산을 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행해야 할 증권금융은 가본 길에만 익숙한 초보였다. 증권사의 은행급인 증권금융은 1955년 설립 이래 투자자들이 증권사에 맡긴 고객예탁금을 국공채나 머니마켓펀드(MMF) 등을 매입해 운용하거나 투자자가 증권 매매를 할 때 필요한 자금을 융통해 주는 업무를 해왔다. 모두 정부 승인을 받은 독점적인 사업이라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가보지 않은 자본시장통합법을 넘기 위해서는 우선 지급결제 대표기관으로 선정돼야 했다. 이것이 되면 일반인들이 은행계좌가 아닌 증권사 계좌로도 공과금 등을 납부하도록 하는 업무를 대행할 수 있었다. 3년 동안 준비해 온 숙원사업이기도 했다.
하지만 '자통법'은 쉽게 길을 내주지 않았다. 은행권의 반대가 쏟아지면서 산행은 중단(지급결제 기관 탈락)됐고, 모두 길을 잃고 탈진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길을 잃었을 땐 왔던 길을 돌아가라'는 산행 수칙대로 그는 증시 주변 자금을 집중 관리하는 증권금융의 설립목적을 되새기며 지금까지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가기로 결정했다. 빅뱅을 앞둔 금융시장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안정보다는 모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2011년 영업규모 100조원, 자기자본 1조원, 당기순이익 1,000억원이라는 나침반과 지도(비전)를 꺼내 들었다. 우선 기진맥진한 조직원들을 추스리기 위해 전 직원에 대해 성과급제를 도입했고, 영업 직원에 대해서는 인사상 혜택을 줬다.
증권사의 CMA자금을 위탁 받아 운용하는 업무도 맡았고, 담보대출 대상도 상장주식에서 비상장주식, 주가연계증권, 주택저당증권 등 다양한 유가증권으로 확대했다. 내년부터는 대주(주가가 비쌀 때 주식을 빌려 줘 매도한 뒤 값이 떨어질 때 주식이 사서 갚게 하는 제도) 업무도 시행할 예정이다.
그는 운용중인 CMA 자금 등이 갑자기 빠져 유동성 위기에 처할 때를 대비해 금융권과 자금 대출 약정을 맺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사장은 "금융도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에서 산행과 비슷하다"며 "산행 때 만약에 대비해 랜턴 우의 신발을 준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이런 노력으로 증권금융은 올해 상반기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영업이익은 145%, 순이익은 204% 늘어나는 성과를 거뒀다. 이대로라면 정복해야 할 산봉우리도 얼마남지 않았다. 그는 자만하지 않는다.
아직 넘어야 할 산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나의 봉우리를 넘으면 또 다른 봉우리가 나옵니다. 산행은 이제 시작일 뿐이죠. 증권금융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인도하는 셀파가 될 겁니다."
안형영 기자 promethe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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