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 원권 지폐에 신사임당(申師任堂ㆍ1504~1551)을 모시기로 결정된 이후에도 일부 여성들의 반대가 많은 모양이다. 5,000권의 인물이 아들 율곡 이이이고, 그 뒷면에 사임당의 풀ㆍ벌레 그림까지 들어가 있으니 화폐 인물이 너무 편중된다든가, 시대적인 느낌 상 유관순이 낫다든가 하는 것은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본다.
그런데 현모양처 이미지라서 안 된다는 주장은 좀 이해가 안 간다. 어진 어머니, 착한 아내는 가부장적 남성 우월주의의 논리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요즘 자상한 아버지에 좋은 남편은 여성 우월주의의 논리인가?
■예나 지금이나 현모양처는 좋은 것이다. 다만 여성에게 어머니와 아내의 역할만을 요구하고 다른 것은 하지 말라고 한다면 현모양처를 여성 억압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악용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임당의 참모습을 안다면 오히려 여성들도 반길 것으로 본다. 셋째 아들 율곡이 어머니의 일생을 기록한 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아버지가 어쩌다 실수가 있으면 반드시 잘못을 지적하고, 자녀가 잘못이 있으면 훈계하였으며, 주변이나 아랫사람들이 허물이 있으면 꾸짖으니 종들도 모두 존경하며 떠받들고 좋아했다."
■사임당의 남편은 식견이나 수준이 아내보다 한참 떨어졌다. 남편을 닦달해서 그나마 사대부로서 체면치레는 할 만큼 공부를 시킨 사람이 아내 사임당이다. 사임당은 남편에게 이런 당부를 한다. "내가 죽더라도 다시 장가들지 마세요. 우리에게는 이미 칠 남매나 있습니다.
그러니 또 무슨 자식을 더 보겠다고 <예기> 에서 가르치는 것을 어기겠습니까?" 남편이 이의를 제기하자 사임당은 공자 증자 등의 사례를 들면서 주자는 47세에 상처한 후 집안과 아이들 돌볼 여자가 필요했는데도 재혼하지 않았다고 논박한다. 예기>
■이런 아내라면 오히려 무섭지 않을까? 그런데 이렇게 대단한 아내가 조선 시대를 통틀어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천재적인 화가이자 서예가이기까지 한 것이다.
포도 그림 같은 것은 절품이거니와 초서 작품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완벽하면서도 따스하여 감탄에 감탄을 불금케 한다. 사임당은 중년 이후 집안에서 큰 어른 대접을 받으며 대소사를 지휘한다.
왕언니 내지는 큰누나 이미지다. 사임당이 현모양처라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남성 우월주의 따위가 감히 악용할 수 있는 그런 차원의 현모양처는 아니었다. 16세기에 그만큼 독자적인 자기 세계를 구축한 인물은 남성 중에서도 그리 많지 않다.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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