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국의 전문가 팀과 함께 영변 핵시설 불능화 작업에 착수한 것은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 중요한 진전이다. 영변 핵 시설의 폐쇄ㆍ동결 수준에 머물렀던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체제를 뛰어넘는 조치가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미 국무부 대변인도 어제 "긍정적인 첫 걸음으로 우리는 이것이 지속되기를 강력히 희망한다"고 평가했다.
불능화는 영변 5메가와트 원자로와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인 방사화학실험실, 핵연료가공 시설 등을 일정 기간 가동이 불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을 포함해 11개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수준의 불능화에 대해 실효성 논란이 없지 않다. 그러나 연내 이행 시간표를 지키고 완전 핵 폐기를 위한 다음 단계로 진행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만큼 합의된 대로나마 조치를 이루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이와 함께 또 하나의 연내 이행 사항인 모든 핵 프로그램 리스트의 신고도 성실하게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이미 추출한 무기급 플루토늄의 정확한 양과 행방, 2차 북핵 위기의 발단이 됐던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에 대해 신뢰할 만한 보고가 이뤄질 때 북한의 핵 폐기 의지에 대한 진정성이 인정 받게 될 것이다.
미국 조야에는 여전히 북한에 대한 의구심이 상당하며 북한-시리아 간 핵 협력 의혹이 이를 증폭시키고 있다는 것을 북한은 잊지 말아야 한다.
미국을 비롯한 6자회담 나머지 참가국들의 상응조치도 중요하다. 특히 미국은 북한이 핵 불능화와 신고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에 맞춰 테러지원국 명단과 적성국교역법 적용 대상에서 북한을 빼주기로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
미 의회 차원의 견제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지만, 의회를 핑계로 약속 이행을 미룰 경우 6자회담의 틀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북미 간 극도의 불신 속에서도 북핵 문제 해결의 진도가 지금 단계까지 온 것은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의 상응조치를 통해 신뢰를 쌓아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이 약속한 행동을 취할 때마다 적절한 보상을 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변화를 견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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