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전략기획실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씨가 최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및 언론을 통해 비자금 조성 등 삼성의 치부를 폭로한 데 이어 어제는 직접 기자회견을 했다.
삼성도 김씨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장문의 자료를 내고 그룹 차원의 정면 대응에 나섰다. 사안의 폭발성과 파장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삼성과 김씨 등 당사자들이 보다 책임 있는 자세로 여러 의혹의 진위를 투명하게 밝히는 것은 물론, 검찰 등 관계당국과 관련 인사들도 강 건너 불 보듯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김씨의 이력과 행태를 둘러싼 이런 저런 뒷말이 많고 주장의 신뢰성을 의심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이 메가톤급 비리 논란에 휩싸인 것만으로도 우선 부끄럽고 실망스럽다.
김씨가 제기한 거액 비자금 조성, 사회지도층 인사 떡값 관리, 이건희 회장의 로비 지시, 에버랜드사건 증인ㆍ증거 조작 의혹 등은 어느 하나도 쉽게 넘겨버릴 문제가 아니다.
김씨가 형사처벌을 감수하는 '양심선언' 형식을 빌렸고, 차명계좌와 이 회장 지시문건 등 자료를 제시한 사안에 대한 삼성의 해명이 옹색한 점에서 더욱 그렇다.
삼성은 김씨가 주요 임원이었던 것은 사실이나 폭로한 내용은 대부분 구체적 증거가 없는 부분적 정보를 확대ㆍ과장ㆍ왜곡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차명계좌는 개인 간 거래에 의한 것이고, 비자금 분식회계는 있을 수 없으며, 떡값 얘기도 유언비어일 뿐이고, 에버랜드 사건은 2심까지 유죄로 판결났다는 것이다. 재직 7년을 포함, 10년 동안 100억원대의 대우를 받으며 잘 지내던 그가 돌연 '양심'을 앞세운 동기와 배경도 불순하다고 했다.
김씨는 회견에서 떡값 관리대상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는 등 '순차적 폭로'를 예고하며 관련 당국이 진실규명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이제 사회적으로 진위를 명백히 가려야 할 '진실의 순간(momentum of truth)'을 맞았다.
삼성도 이번 폭로로 '기업 이미지 및 정상적 경영활동이 위협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말한 만큼 진실 규명에 주저할 일이 아니다. 삼성이든, 김씨든, 검찰이든 곪은 것은 빨리 터뜨리는 게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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