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4일 일본 나리타(成田) 공항의 입국 로비. 허름한 차림새의 북송 탈북자들이 가족, 친지와 감격적으로 상봉했다. 5년 전 일본 귀환에 성공한 북송동포 남성(58)의 가족 9명을 포함, 모두 13명의 탈북자들이 일본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입국장에서의 기쁨은 잠시, 탈북자들이 일본에서 맞는 현실은 새로운 가시밭길이다. 언어와 주거, 취업, 사회적응 등 일본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최근 북송 탈북자와 가족들의 일본 입국이 부쩍 늘고 있다. 1996년 처음 존재가 알려진 이후 11년 동안 170여명이 일본 땅을 밟았다. 올해 들어서만 21명이 새로 일본에 들어왔다. 먼저 들어온 탈북자들이 가족들을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아 이들의 일본 입국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탈북자들의 시름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북한에서 태어난 자식, 손자들이 탈북 대열에 합류하면서 탈북자들은 더욱 더 현지 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한을 적대시하는 일본 사회의 싸늘한 분위기, 탈북자들에 대한 사회적 냉대와 압력은 공항 입국장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들의 어깨를 짓누른다.
이들은 일본에 오기 전부터 이미 마음의 병을 갖고 있다. 탈북자 상담 역할을 맡고 있는 재일동포 정신과 의사 이창호씨에 따르면 탈북자의 30% 이상이 심리적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고 있다. 북한에서 북송 동포라는 이유로 차별 받고, 식량난으로 친족이 굶어 죽거나 지인이 공개처형을 당했던 기억 등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일본 출신이라는 이유로, 일본에 와서는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이중의 차별과 설움을 받는다.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걱정, 중국에서의 힘들었던 도피생활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재일동포 북송 사업에 책임 있는 당사자이기도 한 일본 정부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일본 정부는 재일동포에 대한 역사적인 빚을 의식하는 듯 북송 탈북자의 일본 입국에 대해'허가는 하되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태도로 수수방관하고 있다. 일본 국적인 북송 일본인처에 대한 지원조차 민단의 탈북자지원센터가 맡아서 할 정도이다.
지원센터 관계자는 "우리는 탈북자들에게 임시적인 삶의 방편을 제공할 수는 있지만 그들이 진짜 필요한 것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 북송사업
북한과 일본 정부가 체결한 협정에 따라 조총련계 재일동포와 가족들을 북한에 송환한 사업. 1959년 12월 14일 975명의 동포를 태우고 북한 청진항으로 출발한 이래 1984년까지 총 186차례 9만3,000여명이 북환에 송환됐다.
북한은 노동력 부족 등을 해소하기 위해 북송사업을 추진했다. 일본은 거주지 선택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북송사업을 적극 추진했다.
그러나 일본이 북송사업을 추진한 배경에는 인도주의보다는 '골칫거리 쫓아내기'의 측면이 강했다는 사실이 최근 공개된 문서에서 확인됐다.
도쿄=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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