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 후보작 6편을 세 차례에 나눠 소개한다. 활발한 현장 비평을 펼치고 있는 중견 및 신진 평론가들이 2006~2007년 한 해 동안의 한국문학 지형도에서 후보 작가와 작품이 차지하는 위상과 의미를 설명한다. 평론가 해설과 함께 후보 작가와의 ‘미니 인터뷰’를 싣는다.
게재 순서(작가 이름 가나다순)는 김훈 <남한산성> , 윤성희 <감기> , 이기호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 정이현 <오늘의 거짓말> , 천명관 <유쾌한 하녀 마리사> , 편혜영 <사육장 쪽으로> 순이다. 수상작은 이달 중순 발표될 예정이다. 편집자 주 사육장> 유쾌한> 오늘의> 갈팡질팡하다가> 감기> 남한산성>
■ 김훈 <남한산성> 삶을 회피않는 유물론적 언어감각 미덕 남한산성>
▲키워드로 본 후보작
작가론 키워드: 김훈
김훈을 호명하는 명칭들이 있다. 기자 출신의 소설가, 자전거레이서, 청년작가, 후기자본주의시대의 네안데르탈인, 장인, 탐미적 문체주의자, 허무주의자, 파시스트 등등. 부분적으로는 옳다. 김훈도 자인한다. 그러나 김훈은 김훈일 뿐이다.‘김훈’은 무수한 호명과 해석의 잡음을 낳지만 정작 자신은 텅 비어있는 이름이다.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그것들이 결국은 아니게 되는 이름. 김훈에 관한 작가론은 김훈이라는 떠도는 말, 그 무엇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김훈이라는 이름에 대한 주목에서 시작해야한다. 김훈은 고유명의 작가다.
고유명은 이름처럼 다른 무엇으로도 환원 불가능한 인간의 개별성을 잘 드러내는 언어다. 김훈이 소설에서 인칭대명사를 그토록 쓰지 않는 이유다. 이 고집스러움은 김훈의 인간학이기도 하다.
작품론 키워드: 의식주
참으로 조야하고 남루해 보이는 유물론적 어휘다. 그러나 김훈 소설은 신석기에서부터 첨단 문명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은 생물학적 삶의 문제, 의식주에 집중한다. 어느 시대든, 어떤 공간이든 간에 가장 오래된 이야기며, 또 가장 최근의 이야기다. 김훈 소설이 폭넓은 공감을 사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자식을 뜯어먹고 옷을 빼앗기며 집이 불타는 민초의 헐벗은 삶. 의식주에 신비한 것이라곤 전혀 없다. 그러나 김훈 소설을 읽다보면 신비한 것은 의식주뿐임을 절감하게 된다. 삶과 죽음, 언어와 침묵, 실체와 헛것, 자존과 치욕, 충성과 배신, 문명과 자연의 대결이라는 김훈 소설 특유의 주제와 변주는 의식주라는 이 물질적 세계에 단단히 비끄러매어져 있다.
<남한산성> 키워드: 울음과 웃음 남한산성>
<남한산성> 은 역사를 잡아당겨 당대현실을 가공의 무대에 올렸다는 데서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를 잇는다. <남한산성> 에는 말의 복잡함과 삶의 단순함이, 전쟁이라는 비상사태와 의식주의 일상이 교차한다. 대의와 치욕사이를 선택하는 자들이 있고 식구를 돌보는 백성들이 있다. 남한산성> 현의> 칼의> 남한산성>
김훈 소설의 드문 미덕은 이 모든 것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현실주의와 유물론적 언어감각에 있다. <남한산성> 은 한겨울밤, 편전을 울리는 신하들의 울음으로 시작해서 봄볕아래, 죽은 사공의 딸 나루를 쌍둥이자식 중 누구에게 시집보낼까 즐겁게 고민하는 대장장이 서날쇠의 웃음으로 끝을 맺는다. 이제, 2007년 현재, 김훈과 김훈 소설이 한국문학의 가장 중요한 고유명임을 부인하는 일은 쉽지 않게 되었다. 남한산성>
■ 미니인터뷰
“별의별 인간에 개별적 정당성을 주려 했다”
-역사소설을 천착하는 이유는.
"내 소설은 역사 그 자체가 아닌, 역사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여기에 악과 폭력의 바탕 위에 세계가 세워졌다는 내 입장을 투영한다. 인류사의 거듭된 약육강식이 그 증거다. 앞으론 역사 아닌 당대의 일을 통해 표현하려 한다."
-<남한산성> 쓸 때 사료는 어떻게 모았나. 남한산성>
"성 안에서도 사관이 실록을 썼고, 일부 지식인들이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내게 중요한 자료는 유언비어, 민담처럼 삶의 구체성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그걸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약간의 자료에 상상을 가해서 복원했다."
-병자호란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내 포인트가 아니었다. 47일간의 무립고원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별의별 인간이 다 있게 마련이고, 그들에게 개별적 정당성을 부여하려 했다."
-남한산성을 윤리가 무화된 실존 공간으로 그린 건가.
"아니다. 거기엔 삶의 지향성이 있었다. 인조가 그렇다. 삶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인조는 치욕과 굴종을 감당하면서도 살아냈다. 그것이 윤리라고 생각한다."
-비루한 현실을 그리기엔 너무 미문(美文)이라는 지적도 있다.
"문장의 뼈다귀인 주어, 동사 갖고만 썼는데 왜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겠다. 스트레이트 문장이 제일 좋다. 이뤄내기 힘든 허영일지 몰라도 앞으로도 스트레이트 문장으로 소설을 쓸 거다."
■ 약력
1948년 서울 출생. 고려대 영문과 중퇴. 73년 한국일보 입사 후 30년간 기자 생활. 95년 장편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 으로 데뷔. 장편 <칼의 노래> <현의 노래> <개> , 소설집 <강산무진> , 다수의 산문집. 원고지에 연필로 창작. 평균 시속 25㎞의 자전거 레이서. 일산 살면서 황석영, 김연수, 이문재 등 동네 문인들과 종종 술잔 기울임. 김추자, 심수봉 노래 좋아함. 강산무진> 개> 현의> 칼의> 빗살무늬>
복도훈ㆍ문학평론가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 윤성희 <감기> 해체적 소설작법으로 '구멍뚫린 존재' 응시 감기>
▲키워드로 본 후보작
작가론 키워드: 그림자의 진실
윤성희 소설에는 궁핍과 고독에서 촉발된 우울과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한 상황을 경쾌하게 딛고 나가는 명랑성이 나타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러한 표정은 세 권의 창작집이 상재되는 동안 계속 변화하고 있다.
첫번째 창작집 <레고로 만든 집> 에서 그 표정이 적막한 고독과 자기소멸의 공포로 일그러져 있었다면, <거기, 당신?> 에 와서 일상을 짓누르는 궁핍과 고독의 슬픔은 대책 없는 낙관적 태도로 인해 좀더 유머러스하고 경쾌한 것으로 전환된다. 세 번째 창작집 <감기> 에서는 전보다 명랑하고 엉뚱해진 만큼 그의 소설에 드리운 그림자는 더 짙고 길어졌다. 감기> 거기,> 레고로>
겉보기에 유쾌한 그의 동화적 세계가 결코 단순한 명랑만화나 속물적 휴머니즘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 그것은 어쩌면 그의 소설에 깔려 있는 이 그림자의 진실 때문은 아닐까.
작품론 키워드: 선물의 윤리
<감기> 에는 구멍 뚫린 존재들의 자의식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무언가 결여되고 버려진 것들에 대한 쓸쓸한 연민은 윤성희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특유의 정서적 태도이지만, 이번 소설집에서는 상처받고 버려진 존재들에 대한 죄의식 혹은 부채의식과 결합되면서 새로운 윤리적 태도를 만들어낸다. 감기>
그것을 선물의 윤리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때 선물은 자본주의의 익숙한 계산법인 ‘기브 앤 테이크’를 벗어난 곳에서 엉뚱하고 낯선 방식으로 전달된다. 게다가 그것은 “제 기능을 잃어버리고 버려진 물건들”(‘무릎’)처럼 실용적 가치를 상실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물의 증여와 순환이 윤리적인 것은 그것을 통해서 구멍 뚫린 존재들이 느슨하게나마 연대하고 서로를 구원할 가능성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때라야 비로소 그들의 ‘구멍’은 단지 상처의 흔적만이 아닌, 새로운 소통과 구원의 통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감기> 키워드: 소실점의 해체, 새로운 소설작법 감기>
우리가 지금까지 익숙하게 봐온 소설(특히 단편소설)은 대개 최소한의 등장인물과 제한된 시공간을 통해 단일한 구조와 의미를 일목요연하게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은 하나의 소실점을 향해 필연적으로 운동하고 그 운동의 클라이막스에서 끝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윤성희 소설에서 이러한 소실점은 희미해지거나 해체된다. 마치 비논리적 궤적을 따라 순환하는 선물처럼 요약이 불가능할 정도로 여러 이야기가 중첩되면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이러한 소설작법은 언뜻 산만하고 무질서해보이지만 그렇게 엉뚱하게 샛길을 만들어가던 인물들은 문득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어떤 진실과 만난다. 중심을 해체하는 리좀적 유희를 구멍 뚫린 주변부적 존재의 삶의 윤리와 결합시키기. 이것이야말로 윤성희만의 새로운 소설작법이라 할 것이다.
■ 미니인터뷰
“등장인물과 독자에 어떤 선물 줄지 늘상 고민”
-<감기> 엔 가족, 특히 대가족 얘기가 많다. 감기>
"대가족에서 자란 것은 아니지만 여러 사람들이 뒤죽박죽, 좌충우돌하며 겪는 얘기를 좋아해서 그런 것 같다. 평범한 가족 말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소설로 다루고 싶은 욕심이 있다."
-가난한 삶을 많이 다루지만 읽고 있으면 따뜻하다.
"작품을 쓸 때마다 작품 속 인물에게 어떤 선물을 줄 것인가를 생각한다. 단 한 번이라도 기쁘게 웃을 수 있는 장소 같은 것 말이다. 그것은 독자를 위한 선물이기도 하다."
-줄곧 단문(單文)으로 글을 써왔다.
"간결한 문장이 좋다. 빠르게 이어지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 이야기를 숨기는 일이 즐겁다. <감기> 에선 하나 아닌 두세 개의 사건을 동시에 전개하는 단편을 여럿 썼는데, 인물 심리를 길게 설명하는 대신 중첩된 이야기 속에서 느끼게 하려는 의도였다." 감기>
-<감기> 속 작품 제목이 대개 두세 글자로 짧다. 감기>
"표제작을 쓰면서 이번 책은 짤막한 제목의 소설들로 엮어보자고 생각했다. 소설집에 통일성을 부여하려는 의도였다. 내 글이 기교를 안 부리는 단문이다보니 짧은 제목과 어울린다는 느낌도 들었고."
-근황은.
"원주 토지문학관에 입주해 있다. 첫 장편을 구상하고 있다. 내년에 완성하고 싶은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 약력
1973년 출생. 경기 수원 토박이. 청주대 철학과,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 <거기, 당신?> . 창작 외엔 무취미. 책 읽고 멍하니 있는 걸 좋아함. 별다른 징크스 없이 규칙적으로 글을 씀. 20년 다 된 오래된 상에서 일곱 식구가 둘러앉아 밥 먹는 시간을 편애함. 10년 내 최대 소망? 친한 선후배와 '취중 계획'해온 해외 여행이 진짜 실현되는 것. 거기,> 레고로>
심진경ㆍ문학평론가 이훈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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