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드 쇼 등 / 아카넷"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아일랜드 출신으로 192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영국 극작가ㆍ비평가, 독설가로 더 유명한 조지 버나드 쇼가 1950년 11월 2일 94세로 사망했다. 최근 한 TV광고 때문에 그가 묘비명으로 쓴 말이 한국에서 인구에 회자됐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옮기면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갈팡질팡하다 무덤으로 가는 덧없는 우리 인생을, 이만큼 명쾌하게 요약한 말도 없을 것이다.
그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피그말리온> 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피그말리온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 음성학자 히긴스 교수가 꽃 파는 소녀 일라이자의 발음을 교정시켜 상류층에 등장시키는 에피소드를 통해 영국 사회를 풍자한 이 작품은 1938년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 로 만들어졌고 버나드 쇼는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다. 마이> 피그말리온>
버나드 쇼가 이런 작품들로 신랄하게 비판한 19세기 말은 영국에서 자본주의가 가장 융성했던 시절이다. 그는 극작가였을 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와 구분되는 영국식 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는 ‘페이비언(fabian) 사회주의’를 주창한 중심인물이었다.
그가 런던정치경제대학 창립자 시드니 웨브(1859~1947) 등과 함께 사회개혁을 위한 ‘점진성의 불가피성’을 모토로 1884년 만든 페이비언협회는 영국 노동당 창당(1900)보다 앞서는 최고(最古)의 사회주의 싱크탱크다. 버나드 쇼가 편집자와 경제 부문 집필을 겸한 <페이비언 사회주의> (1931)는 이 협회의 지적ㆍ정치적 기본 입장을 밝힌 문건이다. 페이비언>
그는 채식주의자로도 유명했다. 그가 죽었을 때 런던의 한 신문이 쓰기를 “버나드 쇼의 장례 행렬에는 염소와 소, 양떼들이 울면서 뒤를 따랐다”고 한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