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10시 서울 마포구 연남동 357의 107. 구불구불 노후한 연립주택가 골목 끝에 길가와 현관을 마주한 단칸방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희뿌연 시멘트 먼지를 뒤집어 쓴 5명의 청소년들이 코끝을 스치는 찬바람에 이마에 맺힌 땀을 쓱 훔쳐내며 연신 깔깔거린다. 청소년주간을 맞아 가출 청소년들의 보금자리인 안산청소년쉼터 학생들이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2시간30분 동안 마포자활센터 주최로 열린 ‘독거 노인을 위한 겨울맞이 집수리’ 자원봉사에 참가했다.
맡은 역할은 낡은 유리창을 이중창으로 바꿔달기. 힘이 좋은 큰 형 정모(19) 군이 시멘트 벽을 깨 유리창틀을 빼내면 김모(17) 군이 새 벽돌을 나르고 이모(18) 군 등이 빗자루를 들고 돌 부스러기를 쓸어냈다.
아직은 노동이 익숙치 않은 하얗고 보드라운 손이지만 ‘따뜻한 우리집’을 그리는 마음만은 견고해 보였다. 2개월 전 6번째로 가출한 이 군은 “거리에서 배회하며 5일을 굶은 적도 있다”며 “춥고 배고프면 집의 소중함을 절로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익숙한 주택가 골목길에 들어서니 집 생각도 절로 난다. 김군은 집에 돌아갈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며 “친구들 돈을 뺏는 등 나쁜 짓은 안 할 테지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고 고개를 저었다.
최근 3년 간 가출 횟수가 6차례 이상인 청소년은 전국적으로 두 배(2004년 35.6%-> 2007년 63.7%) 가량 증가했다. 하지만 따뜻한 집, 그리운 가족 품으로 이들을 돌려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국가청소년위원회(위원장 최영희)가 8~10월 전국 80개 청소년쉼터 753명(남자 332명, 여자 421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향후 귀가 의사를 묻는 질문에 58%(2004년 49.2%)가 “원치 않는다”고 고개를 저었다.
가출 청소년들의 ‘귀가 거부’는 왜 일까. 부모와의 불화(15.9%), 부모의 폭행(15.2) 등 대부분 가족문제(63%)였고, 가정해체(편부모 35.1%, 친척ㆍ형제와 거주 13.6%) 및 빈곤가정(25%)도 상당수였다.
물론 가출 후 삶도 고통이긴 마찬가지다. 가출기간 동안 의식주 등 생존의 어려움(77.8%)이 가장 컸다고 호소했고, 심지어 10명 중 1명(11.3%)은 옥상이나 공원 등에서 노숙생활(11.3%)을 했다고 답했다.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 김진태 부장은 “불화가 생겨 가정을 탈출한 아이를 무리하게 돌려보내려고만 해선 안되며,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범죄예방교육 쉼터 마련 등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현정기자 agada20@hk.co.kr김혜경 인턴기자(이화여대 국문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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