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캐나다 밴쿠버로 자녀 유학을 위해 동반 출국한 한모(41)씨는 월 집세가 부담이 돼 한달 전 현지에서 70만 캐나다달러(이하 루니)에 집을 한 채 장만했다.
문제는 다음 달 치러야 할 잔금. 당초 국내에 있는 자산을 처분해 50만 루니를 충당하고 나머지 20만 루니는 현지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으려고 했지만 하루가 다르게 급등하는 환율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연 초만 해도 800원대 초반 수준이었던 원ㆍ캐나다달러 환율은 현재 950원 수준으로 급등했다. 국내 자산을 처분해 캐나다 루니화로 환전할 때 올 봄과 비교하면 7,000만원 이상, 한 달 전과 비교해도 2,500만원 가량의 추가 자금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한씨는 당장 금융 비용이 부담이 되더라도 환차손을 줄이기 위해 현지 대출을 대폭 늘리는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불과 한 두달 사이 이렇게 환율이 급등할지 몰랐죠. 대출 이자 부담이 만만치 않지만, 환차손보다는 적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세계 주요통화에 대한 원화환율이 급변하면서 기러기가족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미국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은 외환 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미국 기러기 가족들은 웃고 있다. 반면 원화환율이 상대적으로 급등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유럽연합(EU) 기러기들은 송금액이 자고 나면 늘어나면서 잔뜩 울상을 짖고 있다.
미 달러화 대비 원화가치는 작년 연말과 비교해 2% 가량 올랐다. 그만큼 달러화에 대한 원화환율이 떨어진 것이다. 반면 캐나다 루니화 대비 원화 환율은 무려 19%나 치솟았다.
캐나다 루니화 가치가 130년래 최고치까지 치솟으면서 미화 1달러보다 가치가 더 높아진 통화 가치 역전 현상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호주 달러 대비 원화 가치도 작년말에 비해 14%나 낮아졌고, 유로화나 뉴질랜드 달러에 대한 원화 가치도 7% 가량 추락했다.
한씨 같은 이민 가족이나 기러기 가족들의 명암도 극명히 갈린다. 원ㆍ달러 환율 1,200~1,300원대의 고 환율에 신음했던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하면 대조적인 현상이다.
미국에 이민을 갔거나 유학ㆍ연수 자녀를 둔 이들은 ‘원화 강세’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더 떨어질 테니 가급적 송금을 늦추라”는 은행 직원들의 조언에 따라 느긋하게 시기만 조율 중이다.
미국 영주권자 김모(56) 씨는 최근 환차익을 톡톡히 봤다. 원ㆍ달러 환율이 1,000원 안팎을 오가던 2005년 미국에 보유 중이던 부동산을 200만달러(당시 약 20억원)에 팔아 서울 강남에 모텔을 구입했다.
2년 반만에 모텔을 처분해 최근 미국으로 송금한 액수는 274만달러에 달했다. 모텔 가격 상승도 있었지만 환율 하락의 혜택도 상당했다.
하지만 캐나다나 호주 등의 기러기 가족들은 자고 나면 뛰는 환율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회사원 최모(49)씨가 아내와 자녀의 유학 생활비로 매월 호주에 송금하는 금액은 5,000호주 달러. 연 초만해도 730원대였던 환율이 840원에 육박하면서 한 달 송금액 부담이 55만원 가량 더 늘었다.
올 겨울방학 어학연수 시장에도 일대 변화가 예상된다. 미국보다 저렴하다는 이유로 캐나다나 호주 연수 프로그램을 염두에 뒀던 학부모들이 미국으로 급선회할 조짐이다.
유학닷컴 황봉현 팀장은 “지난해 캐나다 초등학생 대상 4주 연수 프로그램 가격이 400만원대 후반 수준이었는데 환율 상승을 감안하면 올해는 적정 가격이 530만~540만원 수준으로 판단된다”며 “일부에서는 가격을 올리지 않는 대신 연수 지역을 도심이 아닌 시골 지역으로 바꾸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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