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온 능우엔 바 안 교수는 고등과학원의 방문교수이다. 그는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70년대에 영재고등학생으로 선발된 수십 명의 다른 학생들과 함께 러시아(당시 소련)로 갔다. 1년간 러시아어 교육을 받은 후 러시아 각지의 유수 대학으로 흩어져 과학기술 각 분야의 학사학위를 받고 전쟁의 막바지에 베트남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얼마 후 통일 베트남의 과학기술을 건설할 인력으로 성장했다. 덕분에 현재 동남아시아에서 한때 잘 살았다는 여러 나라들을 제치고 제대로 된 기초과학분야의 발전을 보이고 있는 나라는 베트남뿐이다.
한때 우리가 선진국으로 바라보았던 필리핀도 기초과학을 일궈낼 힘을 잃고 말았다. 베트남의 지도자들은 전쟁 중에도 전쟁 후를 내다보고 젊은이들을 선발하여 과학선진국으로 보내 교육시켰던 것이다.
몇 년 전 북한 흥남의 50대 처녀와 베트남의 50대 총각의 30년에 걸친 이역만리 연애가 베트남에서 극적이고 아름다운 혼인으로 이어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베트남 총각도 70년대 초 당시 베트남보다 선진국이던 북한의 흥남에 선진 비료기술을 배우도록 파견되었던 것이다.
능우엔 바 안 교수의 지도교수인 능우엔 반 혜우 교수는 20대에 러시아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그의 스승 보골리우보프와 함께 공산권의 노벨상인 레닌상을 받고 귀국했다.
그는 기초과학의 산실인 베트남과학원을 이끌면서 1980년대에 베트남 우주비행사를 배출했다. 그는 우리 과학기술부가 세운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의 이사장으로서 기초과학의 국제협력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중국은 1970년대 후반부터 미국으로 건너간 물리분야 유학생 덕분에 1980년대 중반까지 최우수 학생들이 물리학과로 몰렸다고 한다. 그 후 컴퓨터분야를 거쳐 이제는 경영학쪽으로 학생들이 몰린다고 한다. 그때 물리분야의 토대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중국의 과학기술 수준이 유지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반면 지금 남북한은 모두 기초과학의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물리과목 수강률은 5% 미만이라고 한다. 미국 학생들의 학습수준이 우리보다 별로라고 하지만, 미국의 우수 학생 상당수는 서울대학교 수준의 교과서로 고등학교에서 물리교육을 받고 있다.
북한이 원자력발전과 미사일에 국력을 쏟고 있다고 하지만 일본이나 구 공산권을 통해서 알려지는 북한의 기초과학 수준은 보잘 것이 없다.
올해 포항에 본부를 둔 아ㆍ태이론물리센터의 소장으로 취임한 피터 풀데 교수와 필자는, 빠른 시일 내에 북한이 기초과학에 힘을 쏟지 않는다면 앞으로 개방될 북한은 과학기술발전의 토대를 마련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고 말 것이라는 데에 의견을 같이 했다.
풀데 소장은 독일의 통일과정을 생생하게 체험한 저명한 독일인 물리학자이고, 북한은 아·태이론물리센터에 가입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아·태지역 국가 중 하나이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통일이 되거나 평화시대가 올 때이다. 바로 돈이 되는 쪽으로 모두가 쏠릴 것이 분명한데, 그때 가서 기초과학의 토양을 마련한다는 것은 이미 늦은 일이다. 기초과학이 당장 돈을 만들 수는 없지만, 기초과학이 빠진 나라의 경제선진국 진입은 불가능하다.
냉전 중의 러시아는 미국과 우주개발에 협력한 적이 있고, 중국도 미국과 물리분야 유학생 교류를 하였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남북의 기초과학분야 협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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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완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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