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도 ‘비밀계좌’가 필요할 때가 있다. 아내 모르는 비자금을 만들기 위해서든, 혹은 사업상 꼭 필요해서든 나 혼자만 아는 계좌가 요긴한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필요는 공급을 낳는 법. 이런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은행들의 ‘보안계좌’다. 계좌주인만 그 존재를 알고 남들 몰래 사용하고 싶다는 고객들의 요구로 만들어진 서비스인 만큼 그 동안 일반 소비자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철통같이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본인이 직접 방문한 특정 영업지점에서만 거래가 가능한 것에서부터 인터넷 뱅킹 계좌 목록에서만 살짝 숨겨주는 것까지 각 은행이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의 보안 수준은 다양하다.
가장 철저하게 계좌 정보를 숨겨주는 것은 우리은행의 ‘시크릿 뱅킹’이다. 이 계좌를 사용하면 자신이 계좌를 신청한 은행 영업점 외에서는 본인이라도 계좌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 신청 지점 외 다른 지점 일반 창구직원 신분으로는 계좌의 존재에 대해 은행 내 전산망에서 조회할 수 없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계좌를 통해 거래를 하려면 본인이 직접 개설 지점에 가서 해야 한다. 거래할 때에는 지점장으로부터 거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이 계좌 정보에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인터넷뱅킹, 폰뱅킹, 입출금기(ATM)을 통한 거래도 불가능하다. 불편하지만 그만큼 철저하게 비밀을 지켜주는 것이다. 수시입출금식 보통 예금 가입자나 1,000만원 이상 잔고가 있는 저축성 예금 가입자가 사용 가능하며 이 서비스를 신청하거나 해지하려면 직접 지점을 방문해야 한다.
다른 은행들은 우리은행의 서비스 중 일부분을 완화해 계좌사용의 편의성을 고려하고 있다. 국민은행의 ‘계좌정보 보호제도’는 본인이 직접 점포를 방문해야 신청이 가능하고 한 지점에서만 계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인터넷 뱅킹, 폰뱅킹, ATM 사용 등이 모두 가능하다는 차이점이 있다.
개설 지점이 아닌 곳에서라도 통장만 소지하고 있다면 계좌를 이용한 거래가 가능하다. 다만, 수신 계좌가 10억원 이상인 고객을 대상으로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신한은행의 ‘보안계좌 서비스’와 하나은행의 ‘세이프티 어카운트’는 인터넷 뱅킹, 폰뱅킹 등을 제한하는 대신 모든 지점에서 계좌 정보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이 다르다. ATM 사용만 가능하다. 신한은행의 서비스는 인터넷으로도 신청할 수 있지만 해지할 때에는 반드시 지점을 방문해야 한다.
불편을 최소화한 것으로는 신한은행의 ‘계좌감추기 서비스’가 있다. 인터넷 뱅킹을 사용할 때 혹시 옆에서 누가 계좌번호나 혹은 계좌존재 자체를 보는 것을 꺼려할 경우를 위해 이 서비스는 은행 계좌 목록에서 서비스가 제공된 계좌번호를 빼 준다. 서비스 신청, 해제 모두 인터넷으로 가능하고, 해지했을 경우 인터넷 뱅킹 등 모든 거래가 가능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프라이빗뱅킹(PB) 고객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 보완계좌 서비스가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직원 심부름을 자주 시키는 중소기업 사장이나 한 지점을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가족 중 한 명 등이 이 서비스를 주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최영윤기자 daln6p@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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