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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한국시리즈 우승 이끈 SK 김성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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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한국시리즈 우승 이끈 SK 김성근 감독

입력
2007.10.3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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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에게는 조국이 없다.”

한(恨)이 가슴 속에 사무쳤다. 일본에서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한국에서는 동포란 이유로 차별대우를 받았던 김성근(65).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조국을 찾았다. 그러나 한국생활은 일본보다 더 힘들었다. 일본에선 ‘조센진’이었지만 한국에서는 ‘쪽발이’였다.

강해져야 한다고, 1등이 되겠다고 다짐했던 SK 김성근 감독은 드디어 한(恨)을 풀었다. SK가 2007한국시리즈에서 두산에 2연패한 뒤 4연승하면서 극적인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창단 후 첫 우승을 차지한 SK가 승천하는 용(龍)이라면 우승 청부사 김성근 감독은 여의주였다. 모든 게 꿈만 같았지만 아침에 눈을 떠보니 현실이었다.

‘65세 혁명가 야구의 신(神) 되다’, ‘2연패 뒤 4연승 사상 첫 대역전’ 스포츠 신문 30일자 1면은 온통 SK와 김성근이라는 타이틀로 도배됐다. “허허, 꿈은 아니구먼!” 밤새 우승파티에서 먹은 술이 깨지도 않았다.

그러나 김 감독은 주섬주섬 옷을 챙겨 2군 선수들이 훈련하는 인천 도원 야구장을 찾았다. 우승의 기쁨은 채 가라앉지 않았다. 하지만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11월 8~11일)와 내년 시즌을 준비하기 위한 발걸음을 이미 시작했다.

김성근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쪽발이’. 또 하나는 ‘만년 4강 감독’이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김성근은 죽었다 깨어나도 우승은 못한다. 기껏해야 쫀쫀한 일본식 야구로 4강에 진출하는 게 한계다”고 혹평한다.

그 동안 4강 감독이라는 조롱에 그저 껄껄 웃어넘기던 그는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훈장을 달자 드디어 가슴에 담아둔 이야기를 쏟았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사는 게 더 힘들었다. 투수로 뛸 때는 ‘쪽발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고, 프로야구 감독이 되자 4강 감독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솔직히 강한 전력을 갖춘 팀을 우승 시키는 것보다는 하위권 팀을 3등으로 만드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우승을 했으니 한마디하겠다던 그는 아무리 승부의 세계지만 성적이 전부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항상 벼랑 끝에 몰렸다는 심정으로 야구에 전념한 승부사는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는 언쟁을 벌일 필요도 없다고 했다. “정규시즌에서는 과정이 중요하다면 한국시리즈에서는 결과가 중요하다.

정규시즌 성적을 보면 1년 내내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선지 한국시리즈 우승보다 정규시즌 1위가 더 값지다고 강조했다.

혹자는 김응용(66)과 김성근을 비교한다. 홈런타자 출신인 김응용 삼성 사장은 해태와 삼성에서 총 10차례 한국시리즈를 제패한 프로야구 최고의 명장. 반면 재일동포 투수였던 김성근 감독은 태평양, 쌍방울 등 비교적 전력이 약한 팀을 맡아 빼어난 지도력으로 상위권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한국시리즈 우승은 감독 16년 만에 이번이 처음이다.

김 감독은 “김응용이 양지에서 야구를 했다면 나는 음지에서 야구를 했다”고 설명했다. 김용용 사장은 해태 시절 선동열이라는 불세출의 투수와 김성한 김봉연 김종모 김준환 한대화 등 슈퍼스타를 거느렸다.

태평양과 쌍방울에서 눈물 젖은 빵을 씹던 선수들을 조련해야만 했던 김성근 감독과는 처지가 달랐다. 김 감독은 “김응용 사장이 팀 운영을 기막히게 잘했지만 나와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다”면서 “나는 꼴찌로 평가 받던 팀을 상위권으로 끌어올린 게 자랑스럽다”고 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했던가. 김 감독은 “비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패배자가 될망정 나는 죽어서 제자를 남기고 싶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가난하게 큰 탓에 정이 많은 김 감독은 자신보다는 후배와 제자를 챙긴다.

그라운드에서는 선수들을 혹독하게 대하지만 유니폼만 벗으면 온화한 미소로 그들을 맞는다. 몇 년 전 김 감독의 환갑잔치를 직접 열어준 것도 제자들이었다.

지난해 SK와 2년 계약을 맺은 그는 감독을 그만두면 야구 꿈나무를 육성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밝혔다. 좌완투수 김경태와 외야수 김재구. 이들의 훈련 과정을 지켜보던 그는 파란 하늘을 쳐다보며 상념에 잠긴다.

아마 일본시리즈 우승팀과 아시아 최강의 프로야구 구단을 다투는 아시아시리즈를 상상하고 있을 터.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야구 발전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김성근 감독은 “한국시리즈 우승은 했으니 이제 코나미시리즈만 남았구먼”이라는 말로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다시 발걸음을 내디뎠다.

인천=이상준 기자 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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