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가 펑펑 솟는 중동의 사막에 갑작스런 ‘핵 바람’이 불고 있다. 걸프 국가들과 요르단 터키 등에 이어 이집트도 1980년대 이후 중단했던 핵 프로그램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한 것.
이들 국가는 대부분 석유자원 고갈 등을 대비한다는 등의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사실상 다양한 정치ㆍ경제적 동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29일 국영TV를 통해 방송된 연설에서 “원전 여러 기를 건설하기로 했다”면서 “에너지 공급원을 다양화하고 우리가 보유한 석유와 가스를 미래 세대에게 남겨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지만 이집트에는 34년 동안 채굴할 수 있는 155억배럴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다.
이집트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핵 발전 계획을 동결시켰으나 지난해부터 정책을 바꿨다. 집권 국민민주당(NDP)은 지난해 9월 무바라크 대통령의 차남이자 후계자로 꼽히는 가말 무바라크 NDP 정책위원장의 주도로 핵 에너지 프로그램을 채택했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노쇠한 무바라크 대통령이 아들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기 위한 선전용으로 이번 선언을 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 원인은 이란의 부셰르 원전 건설 이후 중동 국가들이 잇따라 핵 프로그램을 추진한 것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이집트의 국가안보 시스템에서 에너지원 확보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해, ‘전략적 이유’가 있음을 드러냈다. 카이로 알 아흐람 정치전략연구센터의 분석가 모하마드 압델 살람은 “이집트는 이란을 의식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다른 아랍 국가들의 최근 핵 개발 선언도 이집트에게 더 이상 뒤쳐져서는 안 된다는 압력을 주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 등 걸프협력회의(GCC) 6개 회원국은 지난해 12월 평화적 핵 개발 의사를 선언했고 올해 초 요르단도 2015년까지 원전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중동 국가들의 ‘핵 바람’은 핵 기술을 보유한 미국, 러시아, 유럽 국가들이 석유자원 확보와 경제적 목적 등에서 부추겼다는 주장도 있다. 올해 사우디를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핵 개발을 돕겠다고 제안했다.
알제리는 6월에, 예멘은 지난달 각각 미국 건설회사와 원전 건설 계약을 체결했다. 모로코는 지난 주 프랑스 업체와 계약했다. 이번 이집트의 핵 개발 선언에 대해서도 미국은 즉시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숀 매코맥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의무사항을 안 지키고 속이는 이란 같은 나라들은 문제가 되겠지만, 이집트가 국제원자력기구(IAEA) 지침을 따르면서 핵 비확산조약(NPT) 틀을 지켜준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역시 ‘평화적 목적’으로 핵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는 이란의 주장을 묵살하고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며 강력한 경제 제재를 가하는 것과 대비, 미국의 이중적 태도를 드러낸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은 28일 이란의 핵무기 개발설에 대해 “어떤 증거도 없다”고 주장한데 대해 데이너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은 다음날 “이란은 우라늄을 농축하고 재처리하는 나라로, 그 이유가 핵무기 보유를 위해서라는 것은 명백하다”고 반박한 것은 예상된 일이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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