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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싸우는 사회, 폭력문화

입력
2007.10.3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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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시리즈에서 처음 2패를 한 팀이 우승한 적이 없다는 전례를 깨고 SK가 두산에 이후 4연승을 하며 승리했다. SK 입장에서 확률 0%의 기적을 이룬 셈인데, 나름대로 승부의 분기점을 추측할 수 있다. 2연패를 하던 날이었다.

팽팽한 상황에서 SK 투수의 공이 두산 타자의 등을 맞혔다. 긴장감이 터져 싸움으로 변했는데, 타자의 항의에 투수가 더 열을 받았다. 열 받은 투수를 방치한 감독의 잘못은 금세 드러났다.

● 먼저 화내는 쪽 반드시 손해

3차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빚어졌다. 두산 투수의 볼이 SK 타자의 유니폼 엉덩이 부분을 맞혔는데, 이번에도 수비팀이 더 열을 받았다. 또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고, 역시 열을 더 많이 받은 팀이 일을 그르쳤다. 그날부터 SK는 4연승을 하며 '0%의 통계'를 뒤집었다. '먼저 화를 내고, 오래 마음에 두는 쪽이 손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생각했다.

우리 사회는 좀 많이 싸우는 편이다. 지난 주만 하더라도 우선 경부고속도로 망향휴게소에서 싸움이 있었다. 말이 민주노총 화물연대 노조원의 항의 소동이었지, 그것은 싸움이고 행패였다.

언론보도나 인터넷동영상으로 전해진 현장은 일방적인 폭력 행사였다. 정황을 설명할 필요도 없다. 무시무시한 곡괭이로 사무실 전자제품을 내려찍는 모습 하나로 모든 판단을 대신할 수 있었다.

망향휴게소 사측이 앞서 노측 여성조합원을 폭행했다는 주장이나 조폭을 동원했다는 이유 등은 '곡괭이 현장' 앞에서 아무런 이해를 일으키지 못했다.

같은 날 LPGA투어 하나은행_코오롱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 갤러리들의 폭력 소동이 있었다. 골프 시합을 하기엔 날씨가 부적절해 게임을 중단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는데, 시합을 보러 오거나 응원하러 온 갤러리들이 왜 난리를 피우는가.

난리 수준이 아니라 선수들을 향해 물병을 던지고 욕을 하는 일방적 싸움까지 벌였다. 덕분에(?) 그들은 서울서 경주까지 내려온 정성이나 두세 시간을 기다린 성의를 모두 헛되이 만들었다.

그 전날엔 프로축구 울산과 대전의 6강 플레이오프전에선 선수단과 관중들이 떼거리로 싸움을 벌였다. 심판의 판정과 선수의 항의 등 당시의 상황에서 규칙이 적용되어 정확한 판정을 받아 할 대목들은 없어져 버렸다.

싸움의 중심에 서게 됐던 선수의 징계문제만 부각됐다. 집단적인 싸움과 폭력은 이유와 동기를 모두 묻히게 하고, 결과만 남겨놓기에 그 자체가 죄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

알려진 말로 '사회전염(Social Contagion)'이라는 것이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구스타프 르봉이 19세기 말을 '군중의 시대'로 명명하면서 군중심리를 설명한 말이다. 개인의 본능적인 합리성에도 불구하고 군중은 지적ㆍ도덕적으로 저열한 수준에 이른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사회전염으로 형성된 군중심리는 싸움과 폭력의 결과로 나타나며, 이 경우 그 원인이 된 합리적 이유는 결과적으로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의미다. 100년 전의 관찰이었지만 요즘의 상황에도 변함없이 적용된다.

● 이해보다 법의식이 우선해야

싸움과 폭력이 있은 뒤에는 '우발적이었고 상대방의 자극 때문이었다'는 이해와, '억울한 사정이 있더라도 합법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질타가 이어진다. 서로 상반된 진영의 말처럼 들리지만 그것이 결론이다. 르봉의 관찰을 더하면 '합리적 인간은 우발적이고 상대의 자극 때문에 싸우게 되므로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자동차운전면허시험에 안전벨트를 매야 하는 이유를 묻는 객관식 문제가 있다. 한국에서 간 많은 응시자들이 '사고 시 운전자의 안전을 기하기 위해서'라고 답변하지만, 미국 사회는 '안전벨트 착용이 법이니까'만을 정답으로 하고 있다.

안전에 대한 운전자의 의지 여부를 논외로 한다는 것은 '우발적 상황과 상대방의 자극'이란 이해마저 차단한다는 의미다. 우리가 싸움과 폭력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법으로 금지돼 있으니까'하는 명쾌한 공감대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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