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혼자서 뒷산에 있는 백부(伯父)의 시비(詩碑)를 도화지에 옮겨 그리곤 했습니다. 시비에 새겨진 작품 ‘풀’을 몇 번이고 읽곤 했는데 ‘풀이…, 풀이…’ 하고 읊노라면 발 밑의 잔디가 바람 따라 새삼스레 움직이는 게 느껴졌죠.”
2001년 등단 이후 6년 만에 첫 시집 <길에서 만난 나무늘보> (민음사 발행)를 펴낸 시인 김민(39ㆍ사진)씨는 <풀> <폭포> 등의 작품으로 한국 현대시사에 큰 족적을 남긴 김수영(1921~1968) 시인의 친조카다. 8남매의 장남이었던 김수영 시인의 여섯째 동생이 김씨의 부친으로, 김씨는 2남1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폭포> 풀> 길에서>
김씨는 조산(早産)으로 태어난 후유증으로 인해 뇌성마비의 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에게 첫 시집 출간의 의미는 각별하다. “가족, 주변 친지들에게 늘 폐만 끼치면서 살아왔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이제야 조금 면목이 서는 느낌입니다. 이제 시작이라는 각오도 생기고요.”
이런 개인적 배경이 아니더라도 김씨는 한국 시단에서 매우 도드라진 존재다. 그의 첫 시집에 실린 86편의 시는 모두 1행으로 이뤄진 단시(短詩)로만 채워져 있다. 짧은 시편은 5자, 길어도 30자를 넘지 않는다.
화두 같은 제목에 시인은 한 줄 화두풀이를 읊는다. ‘배고픔 쪼는 곳마다 설경이었네’라며 <까치> 를 논하고, <냉이 꽃> 피는 자리를 ‘이곳은 우주 귀퉁이 그리고 또 한복판’이라 명명한다. 그가 ‘이보시게, 자네는 정말이지 멋지게 뒤틀렸군 그래’라며 <하회 삼신당 느티나무> 를 상찬할 땐 역경을 딛고 선 자의 여유가 감지된다. 하회> 냉이> 까치>
김씨는 등단 때부터 1행시라는, 우리 문학에서 드문 시적 형식을 천착해 왔다. 언뜻 일본 특유의 단시인 하이쿠를 떠올리게 하고, 김씨도 하이쿠에서 받은 영향을 부인하지 않는다. “세계 혹은 우주와 자아와의 교감에서 오는 경이로운 울림을 시적으로 확대ㆍ심화시키려는 노력을 지속해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줄시의 형식을 택하게 됐다”는 그는 “이미지가 떠오르면 몇 달이고 그것을 심사숙고하면서 다듬는다”며 창작 과정을 설명했다.
김씨는 시작(詩作)에 있어서 몸의 불편함은, 다른 작가들이 나름대로 겪을 창작의 어려움과 매한가지라고 말했다. 평소 독서를 많이 하면서 시상을 떠올린다는 그는 “어눌해도 솔직하면 감동이 느껴지지만 현란해도 솔직하지 않으면 공허하다”며 자신의 시론(詩論)을 밝혔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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