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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한 '묵'속에 과학이 꽉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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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한 '묵'속에 과학이 꽉찼어요

입력
2007.10.30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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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분을 많이 함유하지만 자기 모양을 유지할 수 있는 말랑말랑한 것. 이렇게 말하면 쉽게 ‘묵’을 떠올릴 것이다. 보다 일반적인 용어로는 ‘겔’이라고 부르는 이 소재가 최근 화장품과 의료계에서 커다란 잠재력을 과시하며 부상하고 있다.

인터넷쇼핑이나 홈쇼핑 등에서는 하이드로 겔 마스크가 여느 마스크의 5~10배인 고가에 판매되고 있으며, 하이드로 겔 소재로 만든 상처 치료용 밴드는 시장에서 점차 점유율을 높여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한 약물을 전달하거나 기능성 물질을 피부에 침투시키는 소재 등도 연구되고 있다. 한마디로 ‘묵(겔)의 재발견’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하이드로 겔의 마법은 말 그대로 ‘물을 많이 함유하면서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특징에서 비롯된다.

하이드로 겔은 전체의 90% 이상을 물로 채울 수 있는 거대한 물주머니다. 때문에 적당한 수분과 유분이 균형을 맞춰야 하는 피부미용이나, 피부가 건조해지면 더 심해지는 아토피 등에 수분을 공급하는 소재가 될 수 있다.

또 피부에 상처가 나면 상처 부위를 촉촉한 상태로 유지해야 건조한 것보다 빨리 진물을 없애고 피부가 재생된다는 연구결과가 밝혀지면서 현재 쓰이는 반창고와 달리 촉촉하게 습윤 상태를 유지하는 밴드들이 나오고 있다.

또한 말랑말랑하지만 구조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조직공학적으로도 유용하다. 예를 들어 최근 줄기세포를 주사해 신경이나 근육, 췌도세포, 뼈 등을 재생시키려는 연구가 한창인데, 조직이 다시 자라려면 세포가 자라는 발판 역할을 하는 지지체가 필요하다.

고분자 하이드로 겔은 생체 친화적이면서 구조를 유지할 수 있어 이러한 지지체로 응용 개발되고 있다. 미국 보스턴대학 연구팀은 백내장 수술 뒤 상처를 봉합할 때 실과 바늘을 사용하지 않고 끈적끈적한 하이드로 겔을 도포하는 방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또 겔에 기능성 물질을 넣은 뒤 겔의 특성에 따라 산성이나 효소반응 등에 따라 기능성 물질을 방출하도록 하면 약물 전달체로도 개발될 수 있다.

■ 물 담은 그물 만들기

겔을 만드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한천, 젤라틴처럼 천연 하이드로 겔도 있고, 다양한 용매와 시약 등을 써서 가열하거나 용해해 겔을 만들 수 있다.

원자력연구원 정읍방사선과학연구소의 노영창 박사팀은 고분자 물질에 방사선을 쪼여 하이드로 겔을 만든다. 고분자가 녹은 물에 방사선을 쪼이면, 고분자를 이루는 탄소와 수소의 결합이 끊어졌다가 다시 붙어 고분자 전체가 그물처럼 하나로 연결되면서 물 분자가 그물 속에 갇히는 하이드로 겔 상태가 된다.

이 방법을 쓰면 방사선에 의해 멸균이 되는 동시에 겔이 적당한 강도를 갖도록 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낸다.

노 박사팀이 이런 식으로 개발한 상처 치료용 밴드는 ‘클리젤’이라는 이름으로 시판 중이며, 외과수술 시 장기끼리 들러붙는 것을 막는 장기유착 방지용 겔도 개발중이다.

또한 겔과 황토를 섞은 황토 마스크, 한방에서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천연성분을 섞어 만든 여드름과 미백기능성 마스크, 모기 밴드 등을 연구원들이 직접 피부에 붙여가며 시험중이다. 연구팀은 개발된 제품들을 화장품 업체에 기술 이전하는 것을 추진중이다.

연구팀의 임윤묵 박사는 “하이드로 겔은 단지 마르지 않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체 수분 함량이 높아 밤새도록 덮고 자도 마르지 않을 정도여서 상처 치료용 밴드나 화장품 등으로 활용 영역이 높다”며 “특히 방사선 조사로 만들어진 겔 제품은 멸균까지 된 상태라 방부제가 따로 필요 없는 고급 제품이 된다”고 말했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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