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일부터 열렸던 2007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이 27일 막을 내렸다. 14일 끝난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가 동시대 연극의 비언어적 퍼포먼스와 장르 간 혼종 경향을 보여줬다면, 한국을 포함해 9개국이 참가한 이 연극 향연은 ‘기본과 정통의 길’을 보여주었다.
독일 거장 피터 슈타인이 연출한 그리스 국립극장 <엘렉트라> 에서부터 영국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의 <사랑의 헛수고> 에 이르기까지 고전의 반열에 오른 희곡 텍스트를 각 나라 고유의 공연 문화 맥락 속에 안정된 기량으로 구현해 냈다. 사랑의> 엘렉트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 폐막작 <사랑의 헛수고> 는 축제의 끄트머리를 장식하는 흥겨운 코미디다. 셰익스피어 희곡을 다양한 방향으로 해체한 실험적인 공연물들을 접해 온 우리 관객에게 어쩌면 너무 평범한 셰익스피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글로브 극장의 무대를 고스란히 옮겨온 이번 공연은 우리 마당놀이처럼 만만하고 친근했다. 사랑의>
극장 로비에서 악사와 등장 인물들이 축제의 기분을 달구고, 객석 통로를 활용한 열린 등퇴장구로 활력을 만들어 갔다. 마치 산대놀이 대본을 두고 연희를 펼치듯 관객들에게 눈을 맞추어, 희극이 방종한 자연의 과잉 에너지를 만끽하는 예술임을 입증하려 했다. (도미닉 드롬굴 연출)
가상의 나라 나바르 공국의 왕은 그의 충신들과 3년 동안 금욕을 맹세하고 학문에 정진하고자 서약한다. 하지만 매력적인 프랑스 공주와 아리따운 수행원 여인들의 방문으로 금욕의 맹세가 파기된다.
이 소동과 남녀 간 사랑의 줄다리기를 풍성한 언어유희와 성적 메타포(은유)가 가득한 재담으로 펼쳐간다.
세트 없이 의상과 커튼만으로 전막 상연이 가능한 엘리자베스 시대의 연극적 관약(慣約)을 충실히 구현하고 가장놀음, 가면무도회 등 당시 여흥거리와 볼거리를 자연스레 담았다. 얼뜨기, 촌뜨기, 허풍선이 어르신, 재치광대, 양반, 노장, 말뚝이, 쇠뚝이 등 희극의 필수 요소이자 우리에게 익숙한 등장인물 유형들이 낯설지 않다.
그런데 역시 자막이 문제다. 이 재담극의 방종한 리듬과 풍성한 언어유희를 늦된 문자 해독력으로 따라가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던 것일까.
희극의 근원적 가동력인 풍요제의를 한껏 부풀리는 말잔치와 성에 관한 비유적 입담 등은 문어체의 번역과 무대와 자막의 어긋나는 타이밍으로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문명의 가면을 벗기고, 야성을 회복하게 하는 희극의 기운이 극장의 액자틀과 자막에 갇혀 자주 웃음이 불발되어 버린다. 극장은 때로 인간과 사회를 배우는 학교일 수 있지만 책을 읽는 도서관은 아닌 모양이다.
극작ㆍ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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