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물로 알려진 무구정광대다라니경(无垢淨光大陀羅尼經ㆍ국보 126호)의 제작연대가 8세기 초 통일신라인지 11세기 초 고려인지 단정하기 어렵지만, 지금까지 통설처럼 통일신라시대 것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홍남)은 25일 박물관 소강당에서 ‘석가탑 발견 유물 조사 중간 보고회’를 열고, 조사위원회(위원장 천혜봉)의 위임으로 서울대 국사학과 노명호 교수와 언어학과 이승재 교수가 4개월에 걸쳐 실시한 총 110쪽의 묵서지편(墨書紙片) 판독 결과를 발표했다.
석가탑 보수 기록을 담은 종이뭉치인 묵서지편은 무구정경의 정확한 제작연대를 밝혀줄 것으로 기대를 모아왔으며, 이번에 전체 판독이 완료됐다.
판독자들은 상하좌우로 접혀 석가탑 내 사리함 밑에 납입됐다가 조각조각 떨어져 한 뭉치로 엉겨붙은 채 발견된 묵서지편을 순서대로 연결한 후 판독했다. 그 결과, 고려 현종 15년인 1024년의 기록 2건과 정종 4년인 1038년의 기록 2건 등 총 4개의 문건이 확인됐다.
무구정경에 관한 기록은 1024년과 1038년의 중수 기록 모두에 나온다. 석가탑을 처음으로 해체ㆍ보수한 1024년 기록에는 “신라 때 안치한 무구정경을 꺼냈다가 석탑을 다시 세울 때 안치했다”고 돼 있어 당시 납탑된 것이 신라 대 제작된 최고본이었음을 확인해준다. 그러나 잇단 지진으로 14년 만에 다시 석가탑을 중수한 1038년의 기록에는 “무구정경을 넣었다”고만 적혀있어, 최고본 무구정경을 꺼냈다가 다시 안치한 것인지 새로 제작한 무구정경을 따로 넣은 것인지 분명치 않다. 만일 무구정경이 고려 시대 제작돼 납입된 것일 경우 세계 최고 목판인쇄물의 자리는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770년)에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이승재 교수는 정종 4년 2차 수리기록에서 “사리를 수습하되 전물부동(前物不動) 하게 안장하였다”(무구정경이 들어있던 사리함 내부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는 구절이 있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무구정경이 1차 수리 시 납입된 신라 것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보협인다라니경 등 고려 때 추가 납입한 문서들은 주로 사리함 외부에서 발견된 반면 유독 무구정경만 사리함 안에서 발견된 것도 이 점을 뒷받침한다.
박물관과 조사위 측은 “무구정경의 제작연대는 실물을 직접 조사해야만 정확하게 밝힐 수 있을 것”이라며 “모든 연구자들이 열람할 수 있도록 묵서지편 사진과 판독 내용을 홈페이지(http://museum.go.kr)에 공개하고 추후 국제 학술회의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