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늦깎이 학생’은 서럽다. 특히 40~50대의 중ㆍ고령자가 일자리를 잃은 뒤 재취업을 위해 학교에 들어가 공부한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생계 걱정 없이 공부에만 전념하기엔 실업급여 등 ‘사회적 안전망’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부실하기 짝이 없다.
힘겹게 늦깎이 학생이 돼도 젊은 학생들과 주위의 부담스러운 시선 탓에 마음 놓고 공부하기 어렵다. 어렵사리 공부를 마쳐도 문제는 남는다. “나이 많은 사람은 무능력하고 업무 효율성도 떨어진다”는 그릇된 편견이 사회에 만연한 탓에 ‘졸업=재취업’을 보장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고용정보원 권재철(45) 원장은 “늦깎이 학생들이 많이 나와야 40대 이상 중ㆍ고령자들의 재취업 문제가 풀린다”고 말한다. 한번 입사하면 정년이 보장되는 ‘평생 직장’이라는 말이 사라진 고용시장에서 전직이나 재취업의 필수 전제 조건으로 직업ㆍ직무 능력 향상을 위한 평생학습을 강조한 것이다.
권 원장은 ‘구직자가 회사를 그만두고 학교에 들어가 공부한 뒤 다시 재취업에 성공(School to Work, Work to School)하는 선순환 구조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곳’을 이상적인 사회로 규정했다. 그러나 재취업을 위해 학교에 들어간 실직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야박하다.
직장을 잃고 재취업을 준비하기 위해 학교에 들어간 늦깎이 학생은 호기심을 끄는 ‘화제의 인물’이거나 불쌍한 ‘인생의 낙오자’일 뿐이다. 권 원장은 “실업이 개인 차원의 시련이 아닌 사회의 일반적 현상인 상황에서 이 같은 그릇된 편견은 하루 빨리 깨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ㆍ고령자의 재취업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물론 개인 능력 탓이다. 세상은 급속히 디지털 중심의 지식사회로 변했지만 많은 중ㆍ고령자들은 여전히 산업사회의 아날로그 마인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메일 하나 제대로 못 보내면서 부하 직원에게 큰소리만 치다 하루 아침에 구조조정의 칼에 맞아 회사를 떠난 중ㆍ고령자들에게 세상은 냉혹하게 돌변한다. “월급만 축 내는 무능력자”라는 비아냥이 곧바로 따라 붙는다.
권 원장은 그러나 “누구도 이들을 무능력자로 낙인 찍어 돌을 던질 자격은 없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죄가 있다면 평생 직장의 개념에 사로잡혀 수 십년 이상 회사에 온몸 바쳐 묵묵히 일해온 것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상시 구조조정 체제 등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불행한 세대들이다.
그는 “고령화 사회에서 중ㆍ고령 인력이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고용시장에서 사장되면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엄청난 손실”이라며 “이들이 좀 더 오래 고용시장에 머물 수 있도록 다양하고 실효성 있는 법과 제도들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권 원장은 “중ㆍ고령자 재취업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기업과 정부가 이들에게 적합한 직종을 새로 개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직종 개발은 한 사람이 하는 일을 2,3명이 하도록 업무를 쪼개는 것이다. 일종의 일자리 나누기인 셈이다. 그러나 업무를 나눠줘야 하는 기존 근로자의 반발을 설득해야 하고,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므로 하나의 직종을 개발해 보급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권 원장은 “미국과 일본의 직업 수가 각각 3만개, 2만5,000개인 반면 우리나라에는 1만개밖에 없는데 이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했다. 중ㆍ고령자에게 맞는 직종을 개발할 여지가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그는 “고용정보원도 직종 개발의 일환으로 인생 경험이 풍부한 중ㆍ고령자들을 취업 컨설턴트로 양성해 필요한 기관에 배치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4월 문을 연 고용정보원의 초대 수장인 권 원장은 전국사무금융노련 정책실장을 역임한 뒤 국민의 정부에서 청와대 노사관계비서실 국장, 참여 정부에서 청와대 노동비서관을 지냈다.
노동부 산하 기관인 고용정보원은 고용 정보 수집을 통한 고용동향 분석, 직업 연구 및 진로 교육,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 전산망 관리, 취업포털 워크넷(www.work.go.kr) 운영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고용정보원은 또 ‘생애 경력 개발 프로그램’ ‘성공 실버 프로그램’ 등 각종 취업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해 각 지역의 고용지원센터에 제공한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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