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서의 주요 작전은 종료됐다. 미군과 연합군은 이라크 전쟁에서 승리했으며 우리는 이라크의 안전확보와 재건에 종사하고 있다." 2003년 5월 1일, 임무를 마치고 막 귀환한 핵 항모 링컨호의 갑판에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이라크전 종전을 선언했다. '충격과 공포'(Shock & Awe)의 무차별 공습으로 이라크 침공을 개시한 지 43일 만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조종사 복장을 한 채 헬기가 아닌 전투기를 타고 링컨호 갑판에 내렸다. 세계 최강 미 육해공군의 최고사령관다운 모습이었다. 이날 행사는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 중인 전시 대통령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치밀하게 기획된 최고의 정치 쇼이기도 했다.
백악관은 당시 "법적인 관점에서 보면 전쟁이 끝났다는 것은 아니다"고 토를 달았지만 미 언론들은 사실상 종전선언으로 받아들였다. 부시 대통령은 이를 통해 전시지도자상 부각, 국민결속과 지지확산 등 정국주도권 확보는 물론 차기 대선을 겨냥한 정치적 효과를 톡톡히 봤다.
전쟁의 최대 명분으로 삼았던 대량살상무기 증거를 찾지 못했고 미국이 헤어나기 힘든 이라크 수렁에 빠졌음이 분명해진 것은 훨씬 뒷날의 일이다. 국제법 상 전쟁종결 절차와 관련한 일반적 개념이 아닌 종전선언도 이렇듯 정치적으로는 꽤 쓸모가 있다.
● 종전선언은 정치적·상징적 의미
혼선을 빚고 있는 한국전 종전선언 용어도 정치적ㆍ상징적 의미가 크다. 이 용어가 본격 거론되기 시작한 계기부터가 그랬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베트남 하노이 APEC(아태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기간에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김정일 위원장, 노무현 대통령과 한국전쟁을 끝내는 문서에 서명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당시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은 이 내용을 브리핑하면서 '종전선언'이라는 표현을 썼고, 이때부터 종전선언은 평화협정과는 별도로 존재할 수 있는 개념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부시 대통령은 좀 모호하긴 했지만 전쟁종료 선언과 평화협정을 같은 맥락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쟁 종료를 법적ㆍ제도적으로 완결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일이 걸리는 것은 상식이다. 이미 개발한 핵무기나 무기급 플루토늄 처리도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임기가 정해진 부시 대통령이 직접 서명 운운했으니 정식 평화협정 체결에 앞서 전쟁을 끝낸다는 정치적 상징적 선언을 하자는 뜻으로 이해되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여기서 평화협정에 앞서 종전선언을 통해 북한에 체제보장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결국 완전한 북핵 폐기와 평화체제 구축을 앞당기자는 논의가 싹 텄을 것이다.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하자"는 10ㆍ4정상선언 제4항은 바로 이 논의의 연장이다. 여기서 국제법 일반원칙론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종전선언은 평화협정의 맨 나중에 나오는 것이라는 송민순 외교통상부장관 말대로라면 애초부터 종전선언이라는 용어가 그렇게 요란하게 오르내릴 하등의 이유가 없다.
● 중요한 건 평화체제 촉진 여부
중요한 것은 종전선언이라는 이벤트를 통해 북핵 완전폐기와 평화체제 구축을 촉진할 수 있느냐의 여부다. 종전선언을 위해서든 또 다른 명목이든 3자 또는 4자 정상이 만난다면 일대 사건이다.
그 화려한 파티에 김정일 위원장이 초대 받으려면 꽤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연말까지 약속한 북핵 불능화와 완전한 신고의 이행은 물론 이미 개발한 핵무기를 포함해 완전히 핵을 폐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처음으로 다자 정상들과 자리를 함께 하는 것이므로 자신이 대표하는 나라의 격을 웬만큼은 국제 수준에 맞춰야 체면이 설 것이다. 다른 정상들도 김 위원장에게 섭섭치 않게 대접해야 할 것은 물론이다.
북핵 문제와 관련한 시간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 누구에게나 빠를수록 좋다. 빠르고도 좋아야(有快有好) 하지만 좋고도 빠르면(有好有快) 더 좋다. 3자 또는 4자 정상의 만남이 기대되는 이유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