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로렌스 패리 하이드 글ㆍ에드워드 고리 그림ㆍ이주희 옮김 논장 발행ㆍ72쪽ㆍ8,000원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몸이 줄어들어 내 주변의 세계가 몹시 거대해진다면, 혹은 거인처럼 너무 커져버려 주위의 것들이 성냥갑처럼 줄어든다면….
56개의 TV 프로그램을 좋아하고 시리얼 회사에서 주는 경품 모으기가 취미인 엉뚱한 소년 트리혼에게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 늘 손이 닿던 벽장 속 선반에 손이 닿지 않고 바지는 자꾸 늘어나 발에 걸린다. 난감한 상황을 어쩐다.
그러나 어머니는 “케이크가 잘 부풀어야 할 텐데”라며 식사 준비에 여념이 없고 아버지는 “일부러 저러는 거 아닐까. 그냥 튀고 싶어서”라며 시니컬하게 반응한다. 집에서도 이런데 매일 만나는 학교버스 운전사 아저씨도 마찬가지다. “작아지는 사람은 없고, 너는 트리혼 동생인가 보구나.”
트리혼처럼 어른들이 자신의 말을 묵살하는 바람에 속상해하는 아이들이 많다. 에드워드 고리의 그림은 이같은 ‘어린이 세계와 어른 세계의 단절’을 절묘하게 유머러스한 필치로 그려낸다.
아이들의 대화만 살리고 어른들의 대화는 말풍선 안을 까맣게 처리해버리는 ‘스누피와 찰리브라운’ 같은 만화를 떠올리게도 한다.
침대에서 뛰어내려야 할 정도로 작아진 트리혼은 다행히 침대 밑에 ‘아이들이 쑥쑥 크는 키다리놀이’를 발견하고 원래의 키로 회복되지만 이번엔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손, 얼굴, 귀와 머리카락이 연두색으로 변한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혼자 생각한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야지. 내가 아무 말 안하면 아무도 모를거야.”
책을 읽으며 ‘소외의 고통’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아이들의 말을 “말도 안되는 소리 좀 하지 마”라고 묵살했던 어른이라면, ‘동심’ 이라고 불리는 풍부한 상상력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좀 슬퍼질 수도 있겠다. 1970년대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트리혼’ 3부작의 첫번째 작품.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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