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9일은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의 생일 겸 결혼기념일이라 한다. 17대 대선이 치러질 올해 12월 19일이 그의 개인사에 또 다른 축일로 기록될지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다른 후보들의 지지율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높은 지지율을 그가 누리고 있긴 하지만, 한국 정치의 탄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그 탄력의 원천은 정당정치를 압도하는 유권자들의 변덕이다.
탄력적이든 변덕스럽든, 이번 대선에서 최소한의 상식은 관철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으로 이 글을 쓴다. 그 점에서 이 글은 지난 22일자 손호철 칼럼 '손학규 실험과 비상식의 패배' 연장선 위에 있다.
● 범여권 단일화가 이뤄진다면
우선 범여권 후보 단일화 문제.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만이 아니라 민주당의 이인제 후보나 가칭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후보 역시 만만찮은 권력의지를 보여준 터라, 이들 사이에 후보 단일화가 이뤄질지는 알 수 없다.
내년 총선 출마를 저울질하는 정치인들의 이해관계는 후보단일화와 중도우파 세력의 궁극적 통합에 원심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선거공학 수준을 넘어서 정당정치의 착근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단일화가 반드시 옳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만일 단일화가 이뤄진다면, 신당의 정동영 후보로 이뤄지는 것이 상식이다.
이 발언에서 정동영씨에 대한 내 지지를 읽어내는 독자가 없기 바란다. 나는 대통합민주신당의 지지자가 아니고, 따라서 이번 대선에서 정동영씨를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원내 제1당의 대선후보에게 출사를 거두라 강요하는 것은 몰상식하다. 상식을 따르자면, 제가끔 독자출마를 하거나 정동영 후보로 단일화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선 신당 안에서 정동영씨의 후보 지위를 뒤흔들지 말아야 한다. 사실 신당 당원들이 정동영씨를 보호해야 하는 것도 상식이다.
추저분하기 짝이 없는 경선이었지만, 정동영씨는 이제 그 당의 후보이기 때문이다. 2007년의 문국현을 2002년의 노무현으로 여기는 여론이 범여권 지지층 일각에 있는 듯하나, 상식이 가리키는 바는 그가 2002년의 정몽준이라는 사실이다.
여권 한 귀퉁이에서 '신의'라는 칼날로 정동영씨를 집요하게 쑤시는 것도 보기 흉하다. 정동영씨가 신의 있는 정치인이라는 뜻이 아니다. 스스로 인정했듯, 그는 2003년 민주당을 깸으로써 전통적 지지층의 신의를 저버렸고, 2007년 열린우리당을 공중분해시킴으로써 집권세력의 신의를 저버렸다.
그보다 더 큰 배신은 2004년 총선에서 자신이 이끄는 열린우리당이 원내 과반의석을 차지하자마자, '실용주의' 운운하며 개혁의 김을 빼버린 일일 것이다.
그러나 신당 경선 때 정동영씨에게 '신의' 타령을 했던 이들은 정동영씨 못지않은 배신을 태연히 저질러 왔다. 따지고 보면 참여정부 5년 자체가 이 정권을 분만한 지지자들에겐 배반의 세월이었다.
노 대통령은 지난 주에도 벤처기업가들 앞에서 한국 보수주의를 질타하며 어지러운 진보 수사를 농했지만, "삼성의 이해관계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은"(경제학자 전성인씨) 정권의 수장이 아직도 진보의 허영놀이에 빠져있는 것은 보기 민망하다.
자이툰부대 철군 연기는 또 뭔가? 정동영씨와 신당이, 기왕 평화세력을 자임한 김에, 말을 넘어서는 결기로 민주노동당과 연대해 이 또 한 번의 배신을 국회에서 반드시 막아냈으면 한다. 침략전쟁의 뒤치다꺼리를 어영부영 용인하는 평화세력이란 좀 이상하지 않은가.
● 그들이 그들의 길을 가게 하라
다음, 단일화 논의에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까지 끼우려는 움직임이 소위 개혁적 지식인사회 한켠에서 일고 있다. 이들의 '실존적' 위기의식을 이해는 하겠으나, 이것은 몰상식의 극치다.
2002년 대선 앞뒤로 일부 노무현 지지자들이 민주노동당과 그 지지자들에게 저지른 '변소간' 행태를 기억하고 있는 진보 유권자들에겐 또 한 번의 모욕이다. 그들이 그들의 길을 가도록 내버려두라.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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