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협정(FTA) 시대를 맞는 공학인들의 표정은 위기감으로 가득하다. 거센 변화의 파고는 공학 분야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공계 위기’라고 소리를 높여도 위기를 타파할 교육 혁신에 대한 뾰족한 돌파구는 찾기 힘든게 현실이다. 전문가들이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각각 산·관·학을 대표해 한자리에 모인 김중겸 현대엔지니어링 사장, 정준석 한국산업기술재단 이사장, 김현수 성균관대 공대 학장은 “이공계 위기가 바로 공학 교육의 위기”라며 “공학 교육 혁신을 위해 정부와 기업, 대학 3자간 협력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공학 교육이 총체적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정준석
“많은 학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하고 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사실 이공계 배출 인력은 적지 않아요. 문제는 공대를 나온 인력들이 산업 현장을 외면하는 데에 있다고 봅니다. 예전부터 사회ㆍ경제 발전은 자본보다 인적 자원에 좌우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개인이 습득한 기술을 현장에서 써먹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합니다.”
김중겸
“공학 교육의 주체라 할 수 있는 정부, 기업, 대학 간에 고정관념이 뿌리깊게 박혀 있습니다. 분야마다 필요한 인재상이 분명히 있는데도 대학 교육은 기존에 가르치던 방식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찾으려고 대학을 돌아다녀도 대학들 대부분이 정해진 커리큘럼만 따르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 회사만 봐도 직원 교육에만 연간 50억을 투입합니다. 따지고 보면 엄청난 낭비인 셈이지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학교 교육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를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김현수
“이공계 기피 현상은 인력 부족에서 오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2005년 4년제 공대졸업생 수가 6만5,000명입니다. 인구 규모가 우리의 5배에 달하는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지요. 교육의 질이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예를 들어 정부가 추진 중인 공학교육혁신센터는 연구에 치중했던 대학 교과과정의 균형추를 교육으로 돌릴 수 있는 좋은 계기입니다.”
-특정 집단에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성격이 아닌 것 같습니다. 큰 틀에서 봐야 하지 않을까요.
김중겸
“우리나라는 단시일에 경제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대학도 그런 시대 흐름을 잘 따라줬어요. 바로 그 점이, 너무 정신없이 살았다는 게 문제입니다.
하지만 조직에 빨리 적응하고, 몸으로 때워도 가능한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앞으로는 지식을 기반으로 한 원천 기술이 필수적입니다. 석유를 액체화하는 기술 하나를 개발하려고 해도 보통 3,000억 이상이 들어갑니다. 정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김현수
“기업에 학생들을 인턴으로 받아달라고 하면 꺼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안문제나 기술 유출 우려가 있고, 인턴 교육을 위해서는 또 다른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기업도 대학이 맞춤형 인재로 키워주기 원한다면 피드백을 줄 수 있게끔 일정부분 기여를 해야 합니다. 기업이 원하는 것에 대해 대학에 신호를 주면 교수들은 충분히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정준석
“원인 역시 공동의 책임이 아닐까요. 교수 집단, 특히 국립대 교수들은 변화에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교수 평가는 과학기술논문색인지수(SCI)에 논문이 얼마나 인용됐는지,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 수가 몇 편인지 등 실적 위주였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산학협력을 잘하는 교수, 산업계 활용도가 높은 연구를 하는 교수가 유능한 교수로 대접받아야 합니다.”
-인문학계에서는 요즘 융합이니 통섭이니 하는 용어들이 유행입니다. 공대 출신 CEO가 많이 나오려면 조직 통솔에 필요한 창의성과 리더십교육도 필요합니다. 공학 교육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나요.
김현수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전공의 틀에만 갇혀 있어서는 안됩니다. 미래성장 동력에 관한 통계를 보면 우리와 중국의 기술 격차는 이제 3년에 불과합니다. 기술로 승부하기에는 늦었습니다. 문화 경영, 인간에 대한 이해 등 감성적인 교육이 필요합니다. <>
정준석
“동의합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내놓은 자료를 보니 기업이 신입사원을 업무에 투입하려면 1년 정도를 새로 가르쳐야 하고 비용도 7,500만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흔히들 하는 오해가 공대 출신은 현장 근무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작은 현장일지라도 언젠가는 다른 분야의 일이나 전체 업무로드를 조망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할 것입니다.”
김중겸
“제너럴리스트, 즉 조율가가 필요합니다. 기술 분야는 직능별로 너무 세분화 해 있어 장벽을 허물기가 힘듭니다. 옆 집【?무슨 일을 하는 지 전혀 모릅니다. 통합 관리 능력, 리스크 관리 능력의 부재는 경쟁력 저하로 이어집니다. 기업도 문제가 있습니다. 직무 순환제가 좀처럼 정착되지 못하는 것이지요. 전기를 전공한 사람이 기계쪽 일을 하면 경력을 온전히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경력 쌓기가 힘드니 다들 기피합니다.”
-결국 학과 조정과 맞물려 있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학과별로 선호, 비선호 전공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정준석
“인력 수급문제는 장기적 안목이 필요합니다. 4, 5년 전에 수요를 예측해 해당 분야의 인력을 길러야 합니다. 정부도 8개 핵심산업을 꾸준히 모니터링해 현황을 파악하고 대학이 참고자료로 활용토록 하고 있지만 이 정도로는 미흡합니다. 뜨는 산업, 유망 직종이라는 확신이 들면 교과 과정도 개편하고 학과명까지 과감히 바꿀 수 있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김중겸
“공대 교수들에게 경영, 리더십, 인사조직 과목을 커리큘럼에 30% 이상 넣어야 한다고 했더니 별로 탐탁치 않게 여기더라구요.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됐기 때문입니다. 교과 과정을 개편하면 해당 교수도 그 만큼 줄여야 하지요. 하지만 현실을 보세요. 발전 플랜트는 항상 수급 불균형 현상을 겪습니다. 대표적인 3D 업종이어서 지원을 꺼려합니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없으니 기업간 스카우트 전쟁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반면 건축ㆍ토목 지원자는 많은데 정작 수요는 적습니다. 기업과 대학의 자율 범위를 넘어서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가 일정 역할을 해야 합니다.”
김현수
“인재가 중요합니다. 인재풀이 제한되어 있다면 여성공학도에 눈을 돌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참여정부 들어 여성 인재에 대한 재정 지원이 5배 정도 늘었습니다.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학창 시절 공부 잘하고 만능인 소위 ‘알파걸’이 직장에 들어가서 알파 우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출산, 육아 등 여러가지 요인으로 커리어(경력) 단절이 옵니다. 정부의 ‘여학생 공대교육 선도대학’ 지원 대책처럼 적은 비용으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공학의 사회 기여도를 높이려면 기업과 대학의 노력만으로 안된다는 지적들이 많습니다. 공학 인재 양성을 위한 정부 정책의 초점은 어디에 맞춰야 하나요.
김중겸
“현대의 기술 발전 속도는 따라가기가 벅찰 정도입니다. 원천기술이라든가, 핵심기술에 대한 습득과 교육은 기업이 독자적으로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교육 비용에 대해 장기 저리 융자와 같은 정부 지원이 절실합니다. 상용화 가능성을 보고 국가의 지적재산권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과감하게 지원해야 합니다. 외국의 신기술을 즉시 공대 교육 과정에 편입시킬 수 있는 원스톱 정책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김현수
“뻔한 얘기 같지만 대학의 자율성을 말하고 싶습니다. 대학이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공급하려면 유연한 사고가 필요한데 교육 당국은 수동적인 자세를 보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래서는 도전적, 창의적 관리가 힘듭니다. 교육의 기회 평등과 경쟁을 통한 우수 인재 양성은 별개 문제입니다. 인재 양성의 토대인 대학의 세세한 교육내용까지 간섭하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이 아닙니다. 큰 틀의 방향만 정해주고 대학에 자율권을 준 다음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정준석
“산업기술재단도 정부의 의견을 수렴해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이지만 지금까지 정부가 과제를 선정하고 지원하는 상명하달식 방식이 주류를 이뤘습니다. 앞으로는 이 부분과 관련해서도 대학에 권한을 대폭 위임해야 합니다. 대학이 연구 과제와 인력 운용방안을 스스로 정하고 그에 따르는 제반 사항을 정부에 요청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대신 성과에 대한 평가를 분명히 하면 됩니다.”
진행=김진각 사회부 차장 정리=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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