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곤(54ㆍ구속)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이 검찰 조사에서 전군표(54) 국세청장에게 6,000만원을 상납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는 반면 전 청장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어 진위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씨는 전 청장 집무실을 직접 방문해 돈을 건네며 전 청장과 나눈 대화 등 금품 수수 당시의 구체적 정황까지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검찰은 일단 정씨 진술의 신빙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정씨가 검찰 조사에서 밝힌 뇌물 상납 목적과 방법 등에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점도 있어 검찰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 인사청탁을 4, 5차례 걸쳐서 했다?
정씨는 지난해 9~12월 수 차례 전 청장 집무실을 방문해 인사 청탁 명목으로 6,000만원을 건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지난해 8월26일 부산 한림토건 대표 김상진(42ㆍ구속)씨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현금 1억원을 받아 이 돈 중 6,000만원을 1,000만~2,000만원씩 쪼개 4, 5차례에 걸쳐 전 청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그러나 일반적인 인사 청탁이 한 번에 거액을 전달하는 식으로 이뤄지는 점을 감안할 때 돈을 여러 차례 나눠 전달했다는 정씨의 진술에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전직 국세청 고위 관계자는 "인사 청탁을 한다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한꺼번에 뭉칫돈을 전달하는 게 상식"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씨는 지난해 6월30일 부산지방국세청장으로 부임한 뒤 12월 인사에서 유임을 강력히 희망했지만 12월28일 국세청 부동산납세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동산납세국장은 국세청 내에서 비중있는 요직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정씨는 인사청탁 차원에서 조직 총수에게 돈을 건네고도 '대가'를 얻지 못한 실패한 로비를 한 셈이 된다.
그러나 검찰 주변에서는 부산지방국세청장의 경우 그 자리에서 퇴진하는 경우가 많아 본청 국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 '영전'으로 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전 청장이 인사 청탁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면 당연히 뇌물 혐의를 적용할 수 있고, 구체적 목적 없이 상납을 받았다 해도 뇌물 혐의를 적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 검찰, 3각 커넥션 등 주목
검찰은 또 전 청장이 정윤재(43ㆍ구속)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과 정씨를 연결해 줬을 '3각 커넥션'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정 전 비서관은 정씨와 원래 친한 사이가 아니었던 반면 전 청장과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친분을 쌓아온 관계다.
김상진씨에게 세무조사 무마를 청탁받은 정 전 비서관이 전 청장에게 당시 부산지방국세청장인 정씨의 소개를 부탁하거나 세무조사건을 문의하자 전 청장이 정씨를 정 전 비서관에게 연결해 줬다는 추론이다. 정씨는 구속 이후 뇌물 용처에 대해 "이 돈의 주인은 따로 있다"고 수차례 언급해 이 같은 추론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
검찰은 또 정씨가 전 청장에게 상납한 6,000만원이 김상진씨로부터 받은 돈의 일부가 아닐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정씨가 6,000만원을 몇차례에 걸쳐 상납했다는 점에서 김씨에게서 받은 1억원은 정 전 비서관이나 자신의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또 다른 실력자에게 전달한 뒤 전 청장에게는 별도 자금을 건넸을 가능성이다.
그러나 전 청장은 24일 기자들에게 "거대한 시나리오가 만들어지는 느낌이 든다""금품 상납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검찰이 공정한 수사를 하리라고 믿는다"고 말하는 등 의혹을 전면 부인해 검찰의 조사 과정이 순탄치 아닐 것임을 예고했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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