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월부터 향후 5년간 '북악산'의 주인이 되기 위한 각 정당의 대통령 선거 후보들이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일찌감치 한나라당 후보로 간택된 이명박 후보가 독주하다가 최근 대통합민주신당이 정동영 후보를 대항마로 내세우면서 후보간의 공약 대결도 점차 뜨거워지고 있다.
이명박 후보는 '작은 정부'와 대기업 규제 개혁, 성장과 효율 중시의 경제정책으로 모두가 잘사는 국민 성공시대를 열겠다며 표밭갈이를 하고 있다. 이 후보의 공약은 대부분 민심 이반을 가져온 참여정부 정책들과 상반되는 스탠스를 갖고 있다.
반면 범여권의 정동영 후보는 약육강식의 시장 실패를 보완하기위한 '큰 정부론'으로 맞서고 있다. 성장과 분배의 두 마리 토끼잡기, 재벌 규제 지속과 중소기업 육성론, 한반도 평화경제론으로 이 후보와 대립각을 형성하고 있다.
이 후보는 정 후보의 공약이 무능한 좌파정책의 연장선상이라며 혹평하고 있다. 정 후보는 이 후보의 경제공약에 대해 강자가 독식하는 정글자본주의라며 반박하고 있다.
후보들마다 정책 대결로 집토끼(기존 지지계층)를 지키고, 산토끼(반대파)도 잡겠다는 의도가 드러나 있다.
그러나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재원은 감안하지 않은 채 무조건 표를 얻고 보자는 식의 포퓰리즘적인 것들이 적지 않다. 이 후보가 제시한 공약 중에는 논란이 많은 한반도 대운하는 차치하고, 미취학 아동에 대한 무상교육, 기숙형 공립고 150개 육성 등 재원 조달이 쉽지 않은 것들이 많다.
이 후보는 법인세 및 유류세 인하, 부동산 취득ㆍ등록세 낮추기를 통해 12조원 이상 감세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빠듯한 나라살림을 감안하지 않은 감세론은 구두선에 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 후보도 현재 43조원 가량인 교육예산에 대해 40조원을 더 늘리겠다는 입장이지만, 재원 조달이 불투명하다. 근로자 정년을 70세로 연장하겠다는 것도 직장인들에겐 달콤한 사탕이지만,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를 감안하면 그리 녹록치 않은 공약이다.
대권 후보들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 있는 우리경제의 샌드위치 신세 등을 타개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고통 분담을 호소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선진국으로 도약하는데 필요한 '쓴 약'은 주지 않고, 장밋빛 청사진들만 던져주고 있다. 올 5월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됐던 사르코지는 후보 시절 '유럽의 환자'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자국의 경제 재건을 위해 '더 일해서 더 벌자'며 노동시장 유연화, 공공부문 개혁안을 제시했다.
모 후보의 경제참모는 "표를 얻는데 도움이 된다면 당의 정체성이나 지지계층과 상관없이 백화점식 공약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청와대에 입성하려는 각 후보의 다급한 사정은 이해되지만, 국가부채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인기 영합적인 공약은 집권 후에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면 이를 버리고 가야 한다. 뗏목을 짊어지고 갈 수는 없다.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는 공약들은 집권 후 서랍 속에 넣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후보들의 공약 중 상당수는 국민들에게 제시하는 '세금청구서'이다.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현란한 공약에 속아 백지수표에 서명한 후 나중에 후회하는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경제산업부장 이의춘 ec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