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증권, 보험은 금융의 3두 마차. 은행ㆍ증권산업에 이어 보험업계도 이제 대변혁(빅뱅)의 시기를 맞고 있다. 틀 속에 갇혀 있던 국내 생명보험산업으로선 재도약의 기회인 동시에 도태의 위기인 셈이다. 생명보험업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필요한 과제는 무엇인지, 시리즈를 통해 집중 분석한다.
수입 보험료 기준 세계 7위(2005년 기준 588억달러), 1인당 보험료 기준 세계 17위(1,211달러).
세계시장 내 한국보험시장의 좌표다.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 금융 선진국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지표상으론 별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정작 외형에 걸맞은 내실은 아직 미흡하다. 굴지의 외국 보험사들이 국내에 진출해있고 토종사들도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고는 있지만, 생보산업는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다.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보험회사들과 견주면 덩치도 작고, 체력도 현저히 뒤쳐진다.
국내 금융환경의 도전도 어느 때보다도 거세다. 언제나 국내 금융산업의 주류였던 은행과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것은 물론, 최근 자본시장통합법(2009년 1월 시행)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등에 업은 증권업계에까지 도전 받는 추세다. 고령화-저금리 추세속에서 수익성이 갈수록 악화되는 등 사회의 주변 환경도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사실 업계 1위 삼성생명의 최대경쟁자는 2위인 대한생명이 아니다. 대한생명과 교보생명이 궁극적 목표는 삼성생명도 아니고, 그렇다고 쫓아오는 ING생명 같은 외국사만 경계해서도 곤란하다.
신한은행이 경쟁자일 수도 있고, 미래에셋증권이 경쟁자일 수도 있다. 지금은 거대한 자산시장을 놓고 보험-은행-증권이 뒤엉켜 서로 싸우는 형국이다. 가히 '빅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보험업계는 이 칸막이 없는 무한경쟁에서 상대적 박탈감과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한 보험사 임원은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금융정책이 은행 중심이었음은 더 이상 말할 나위가 없다.
증권사들은 자본시장통합법이라는 새로운 먹거리 기반을 받아 냈다. 결과적으로 보험만 홀대 받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판매채널을 은행에 내준 방카슈랑스의 확대시행도 보험업계의 피해의식을 부추기는 대목이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다. 20년을 묵혀 왔던 상장의 물꼬를 틈으로써 재무적으로 튼튼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고, 보험시장통합법 등 보험업계의 역량을 제고할 수 있는 법적ㆍ제도적 기반이 갖춰져야 한다는 공감대도 확산되고 있다.
보험사들도 칸막이 없는 복합경쟁시대를 맞아 제2의 도약을 준비중이다. 고전적인 보험 영역인 위험보장을 넘어, 고객들에게 종합적인 라이프 컨설팅을 해주는 금융회사로 변신을 모색 중이다.
최근 주요 생명보험사들이 신탁업에 잇따라 진출하고 있고, 투자자문업 진출 허용 등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것도 토털 금융회사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은행, 증권과 맞서려면 보험상품만 팔아선 솔직히 곤란하다.
보험은 이제 인생전반의 성장ㆍ건강ㆍ자산ㆍ사망후 관리를 도와주는 라이프 플래너(Life Planner=인생설계자)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사업구조도 개편해 한편으론 대형화를 추구하고, 다른 한편으론 자산운용사 등을 인수해 지주회사형식의 보험그룹을 형성하려는 움직임이 엿보이고 있다.
보험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정부지원도 필수다. 은행으로, 그 다음엔 증권으로 기울었던 금융정책의 무게추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보험개발원 관계자는 "보험회사가 금융겸업화 환경에 대응하기에는 다른 금융권에 비해 업무영역이 너무 협소하다"며 "투자자문업, 투자일임업은 물론 신용카드업무 및 유동화자산관리업무, 타금융업의 대리ㆍ대행업무를 허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증권사에게 허용한 소액지급결제기능도 허용해 보험회사가 수수료를 절감하고 새로운 사업모형을 개발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로서는 은행, 증권사들과의 이해 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최소한 정글을 해쳐나갈 도구는 똑같이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게 위기의식에 휩싸인 보험업계의 주장이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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