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 복원 문제를 놓고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가 딜레마에 빠졌다. 노 대통령의 화해 선결조건을 충족시키자니 차별화가 어려워지고, 자신의 모습을 분명히 하자니 노 대통령의 지지가 아쉽다.
정 후보는 15일 신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된 직후 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10여분간 통화했다. 이어 다음날 언론인터뷰에선 "탈당해 신당을 만드는 데 앞장선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지만 우리당 의장을 2번이나 지낸 사람으로서 대단히 미안하다. 참여정부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화해 공세를 폈다.
노 대통령의 지지를 얻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22일 인터넷언론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 후보가 왜 우리당을 깼는지, 왜 날 쫓아냈는지 말해야 한다"고 풀리지 않은 감정을 재확인했다.
이에 대해 정 후보 측은 겉으로는 "노 대통령이 연대를 위한 대화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속 마음은 답답하다. 청와대 측을 어떻게 구슬러야 할지 몰라서다.
정 후보 측의 한 의원은 "저쪽에서 더 높은 수준의 해명과 사과를 바라는 것 같은데 어디까지 해 줘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도움이 절실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서 더 물러서 참여정부의 계승자로 각인되면 기회비용도 만만치 않다는 판단이다.
이와 관련, 대선기획단 최재천 대변인은 "참여정부 정책 승계 문제를 청와대 측과 실무단위에서 논의 중"이라며 "서로의 진의에 대한 소통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양측의 논의 과정에서 대북 이슈, 부동산 문제, 교육 공약, 중소기업 대책 등은 큰 틀에서 충돌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라크 자이툰부대 파병 연장과 언론 정책은 피해가기 어려운 뇌관이다.
자이툰부대 파병 연장의 경우 정 후보는 범여권 지지층의 성향을 고려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도 최근 "대통령이 되면 (브리핑룸 통ㆍ폐합 조치를) 합리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하는 등 반대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일찌감치 두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정 후보로서는 자신이 그어놓은 선에서 후퇴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노 대통령이 물러서기를 바라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서로 의견이 맞지 않는 부분은 그냥 애매하게 내버려 두면서 공통된 의견을 최대한 부각시키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도 안 되면 노 대통령의 지지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
박영선 후보지원실장은 "관계 복원 대책이 필요하다는 인식 자체가 양측의 싸움을 부추기는 발상"이라며 "정 후보가 조선시대 왕자 책봉을 받는 것도 아니니 자기 비전을 제시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박석원 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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