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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지방이 잘 안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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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지방이 잘 안 되는 이유

입력
2007.10.2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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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13개 광역자치단체들이 벌인 수도권 집중화 반대 및 지역 균형발전 촉구를 위한 서명운동에 동참한 사람의 수가 1,100만 명을 넘어섰다. 이 서명운동의 취지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면서도 지방 내부개혁을 위한 서명운동도 일어나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갖게 된다.

이중의 비극이라고나 할까? 지방이 매년 이런 성격의 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게 첫 번째 비극이요, 그 와중에서 지방의 발전은 중앙에서 하기에 달렸다는 인식이 팽배해져 지방 내부 개혁의 목소리는 약화된다는 게 두 번째 비극이다.

● '전화 한 통'의 연고주의가 큰 문제

지방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지방에서 꼭 19년을 살면서 내가 확신하게 된 답은 바로 연고주의다. 연고주의는 중앙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지방에서 훨씬 더 심하다. 연고주의는 구체적으로 '전화 한 통'으로 나타난다. 될 일도 전화 한 통이 없으면 잘 안 되고, 안 될 일도 전화 한 통이 있으면 쉽게 된다.

'전화 한 통'의 가장 큰 문제는 창의력과 혁신 정신을 죽인다는 데에 있다. 전화 한 통이 없으면 창의력과 혁신 정신은 평가 받을 기회마저 얻지 못한다.

전화 한 통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은 굳이 창의력과 혁신정신을 가질 필요조차 없다. 전화 한 통을 가능케 한 자신의 연고 관리를 위해 인간관계와 접대에 주력하게 된다.

최근 전주에서 발행되는 <새전북신문> 의 한 논객이 <동영이 형, 동영이 동생> 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지연과 학연이 맹위를 떨치는 전북의 호형호제(呼兄呼弟) 문화를 꼬집은 글이다.

이런 비판이 제기된다는 점에서 전북언론에 대해 한 가닥 희망을 갖게 되지만, 전반적으로 보아 지방언론이야말로 전형적인 '전화 한 통' 문화의 선도자라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전북대 학생들이 창간한 인터넷신문 '선샤인뉴스'가 당면한 최대의 난관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전화 한 통'이라는 장벽 때문에 학생들의 창의력과 혁신 정신이 '철없는 학생들의 낭만' 으로 폄하된다.

내가 이 인터넷신문에 관여하는 걸로 알려졌지만, 실은 모든 걸 학생들이 알아서 한다. 나는 뭘 도와주고 싶어도 전북의 아웃사이더인지라 전화 한 통 걸어줄 처지도 못 된다.

나는 학생들의 창의력과 혁신 정신이 탁월하다고 믿기에 그걸 평가해주지 않는 전북의 '전화 한 통' 문화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다가 최근 믿기지 않는 일을 보게 됐다.

선샤인뉴스가 주관하고 전북은행이 주최하는 '전북은행 아이디어 공모전'이 성사된 것이다. 전북도민 의식의 중앙 종속성이 강해 향토기업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낀 학생들이 스스로 이 문제를 연구하고 제안해 공개적으로 이뤄진 일이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전화 한 통'도 없이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나는 감격한 나머지 만나는 사람들마다 붙들고 전북은행의 진취성과 개방성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지금 내가 지나친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생각할 독자들도 계시리라. 어쩌면 나는 이런 문제로 한(恨)이 맺힌 건지도 모르겠다.

● 창의력ㆍ혁신의 변화 조짐에 기대

나는 오래 전 지방대 교수들이 기회만 닿으면 서울소재 대학으로 옮겨가는 걸 지켜보면서 나만큼은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지방에서도 학생들과 더불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어떤 일이건 '전화 한 통' 없인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바로 이런 문화가 지방의 중앙에 대한 정당한 요구의 실효성마저 떨어뜨린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방이 잘 안 되는 이유는 중앙에 있는 게 아니라 지방 내부에 있다! 나는 이제 '중앙 탓'을 그만 두고 이 사실을 널리 알리려고 한다. 이제 지방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걸 믿으면서 말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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