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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잃어버린 10년'의 呪術

입력
2007.10.2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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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며칠 동안 청와대와 한나라당 사이에 개그같은, 그러나 가시 돋힌 공방이 오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벤처기업인 대상의 특강에서 시장 만능주의에 물든 한나라당의 보수성과 무책임을 겨냥한 게 발단이다." '잃어버린 10년'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왕년에 관치경제 시대, 잘 주물러진 시대의 관료 또는 권력자들, 또 관치경제 시대에 정경유착해서 잘 나가던, 공정경쟁을 위해 내놓아야 할 것을 안 내놓고 버티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여러분 과연 10년 동안 잃어버린 게 뭐지요. 있으면 신고하십시오. 찾아드리겠습니다."

● 청와대ㆍ한나라 기싸움 확대

기업인에게 한 말이었는데, 한나라당이 발끈해 엊그제 정책위 명의로 <신고합니다, 돌려주세요-'잃어버린 10년'신고목록> 이라는 긴 자료를 냈다.

경제대란ㆍ집값대란ㆍ실업대란ㆍ교육대란ㆍ안보대란ㆍ헌법대란 등 6란(亂)을 일으킨 참여정부에서 경제성장, 인간다운 생활, 내집 마련의 꿈, 가족의 행복, 젊은이들의 미래, 자영업자의 희망, 국민의 알권리, 알뜰유능한 정부, 주권과 안보, 헌법과 법치 등 10가지를 잃어버렸다는 내용이다.

또 국가채무 재정적자 등 내려가야 할 수치는 올라가고 국가경쟁력 등 올라가야 할 것은 내려갔다고 주장했다.

가볍게 지나갈 수 있었던 사안을 청와대가 정색하고 반박하고 나서 전선이 확대되는 낌새다. 신한국당 등 한나라당의 전신이 10년 전 외환위기를 자초해 나라를 망쳐먹고도 오히려 위기의 극복과 재도약에 노력한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의 10년 성과를 깔아 뭉갠다면 하나하나 따지고 들겠다는 것이다.

특히 참여정부는 정경유착형 낡은 관행을 혁신주도형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냉전적 남북 대결구도를 평화ㆍ경제 공동체로 발전시켰으며 권위주의 해체와 민주주의 신장을 달성했다고 했다.

앞으로 어떤 설전이 오갈지는 모르지만 한나라당을 논전에 끌어들인 노 대통령이 특강에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오로지'보이지 않는 손'과 '작은 정부', 그리고 성장만을 만병통치약으로 신봉하는 신자유주의적 시장주의로는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금을 깎고 정부지출은 줄이자면서 교육과 복지 등을 지원한다거나 국가가 책임진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고,'돈을 좀 거두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역할로 혁신을 지원하고 고용을 지지하며 시장을 확대하고 독점ㆍ특권의 강자로부터 자유로운 시장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결론적으로 "멀리 보고 책임있게 행동하는 진보적 시민민주주의를 제안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게 묘하다. 정의 연대 책임 혁신 풍요 활력 기회 희망 행복 투명 공정 안정 안전 등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꾸며진 이 개념이 성장이란 말 한마디와 대비되는 상황이니 말이다.

적어도 노 대통령의 인식으로는 그렇다. 그렇다면 프로세스가 문제일 텐데, 보수주의만 탓할 뿐,"자만심이 부른 오류"라는 정도의 설명도 없다.

● 공허한 슬로건 국민마음 못사

사실 서민층마저'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단세포적 슬로건에 호응하고 시장의 반칙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큰 문제다. 자영업자의 급증이나 국민적 쏠림현상, 특권적 노조 출현 등 여러 가지 분석이 가능하나, 한나라당에겐 참으로 비옥한 토양이다.

개인적으로 '잃어버린 10년'의 기억과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당 주변에 몰려들어 우국지사처럼 나라를 걱정하는 행태가 용인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잃어버린 10년'을 말하는 쪽과'되찾은 10년'을 주장하는 쪽, 어디를 봐도 대다수 국민들의 곤궁한 삶에 걸린 주술(呪術)은 쉬 풀릴 것 같지 않다. 당장은 모두'요람에서 무덤까지'책임질 것처럼 말하나, 내용을 뜯어보면 한쪽은 철학의 빈곤이고 다른 쪽은 의식의 과잉이다.

어떤 이가 최근"행정은 4각의 뒤주에서 바가지로 쌀을 퍼내는 것"이라고 했다. 구석의 쌀을 남겨두는 절제를 강조한 말이다. 정치라고, 또 경제라고 다를 것 없다. 국민이 마음 줄 곳 없어선 안 된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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