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두산인프라코어가 판매하는 한 공작기계 매출은 최근 2년 새 3배 가량 늘었다. 바로 석유ㆍ가스 시추장비 부품인 드릴파이프(Drill Pipe)를 가공하는 터닝센터(제품명 '푸마')다. 이 제품이 국제유가의 고공행진 속에 톡톡히 효자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2. 포스코는 올해 8월 한국전력과 연료전지 공동개발ㆍ제조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이달 17일 세계 최초로 발전용 연료전지를 생산하는 공장건설의 첫 삽을 떴다.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자원 고갈과 온난화 문제에 대처하는 매우 중요한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유가 100달러 시대가 멀지 않았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는 가운데 고(高)유가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호랑이 굴로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격언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오히려 '호랑이'를 잡아오는 '포수'가 늘고 있는 것이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영업상 비밀"이라며 터닝센터의 매출액을 숨겼지만, 고유가에 따른 직접적인 수혜를 누리고 있음을 굳이 부인하진 않았다. 두산중공업도 중동지역의 발전ㆍ담수 플랜트 수주 증가 속에 오일달러(산유국들이 석유를 팔아 번 돈) 챙기기에 바쁘다.
포스코는 산소와 수소를 화학 반응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용 연료전지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최근 경북 영일만 배후산업단지에서 연 50MW 규모의 생산공장을 착공했고, 2010년 말까지 50MW 규모의 공장을 추가로 짓고 전담 연구소도 설립하기로 했다.
지금도 '잘 나가는 회사'지만, 지구 온난화와 화석연료 고갈이라는 패러다임 변화에 맞춰 보완재를 키워나간다는 구상이다. 또 소수력 발전설비를 통한 전력 생산ㆍ판매로 최근 세계경제의 주 이슈로 부상한 탄소배출권을 확보할 예정이다.
연 매출 7,000억원의 한국철강도 박막태양전지 사업을 신(新) 성장동력으로 키우기 위해 충북 증평에 6만6,000㎡(약 2만평) 규모의 부지를 매입, 조만간 공사에 착수한다. 고려철강과 동국산업도 태양에너지 사업을 추진 중이다.
조선업체들은 고유가 시대의 핵심 사업으로 원유 및 가스 시추ㆍ생산 설비 수주에 적극 나서고 있다. 드릴십(선박형태 시추선) 분야에선 삼성중공업이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드릴십으로 시추하는 원유는 경제성이 떨어지는 심해(沈海)에 있어 기름값이 비싸지 않으면 손대기 어렵다. 그런데 유가가 고공행진하면서 최고 11㎞ 지하 암반까지 뚫을 수 있는 시추선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시추선은 대형 컨테이너선보다 3~4배 이상 비싼 5억~6억달러 수준으로 부가가치도 높다. 김부경 삼성중공업 팀장은 "최근 드릴십 수주 '독점'은 그간 유전개발설비 수주 증가에 대비해 많은 연구를 해온 결과"라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을 중심으로 FPSO(부유식 원유 생산ㆍ저장ㆍ하역 설비) 수주도 꾸준하다.
전자업계도 태양에너지 사업분야 진출에 적극적이다. 삼성전자는 8월부터 LCD총괄 산하 차세대연구소에서 태양광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 LG그룹도 태양광 발전사업 자회사인 LG솔라에너지를 조만간 설립할 계획이다. 계열사인 LG화학은 벽면과 발코니 등 외장재에 태양광 발전모듈을 장착, 전기를 생산하는 건물일체형 태양광발전 시스템 사업분야에 이미 진출했다.
건설업계도 원자재값 상승 등의 부작용은 있지만, 오일머니가 자국 인프라 건설에 쓰여지면서 수주 증가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실제 국내 건설업체들의 올해 해외수주물량 300억달러(10월말 기준) 중 180억달러(59%)가 중동에서 온 것이다.
현대건설 36억달러를 비롯해 두산중공업(34억달러), 현대중공업(31억달러), 삼성엔지니어링(30억달러), GS건설(30억달러)이 수주 대박을 떠트렸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지훈 박사는 "유가는 외생변수이기 때문에 국내 업계가 통제하기는 어렵다"며 "때문에 조선, 자동차 등 전 분야에서 에너지 효율화로 승부할 사업을 발굴하고, 장기적으로 대체에너지 사업 등 신 성장동력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기수 기자 bless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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