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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무대다] <40> 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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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무대다] <40> 두본

입력
2007.10.2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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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로탈사이트, 하이드록시아파타이트, 비할로겐 난연재…’

읽자니 숨이 차고 발음도 꼬인다. 언뜻 화학 분야이려니 하는 감은 오지만 ‘도대체 뭐에 쓰는 물건일까’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일종의 첨가제입니다.” 가슴에 안 와 닿긴 마찬가지다. 이중 일부는 세계에서 딱 3개 업체만 생산한다고 하니 화학과 담쌓고 사는 일반인에게는 생소할 수밖에 없다.

이 대단한 물질을 자체 연구개발해 세상에 팔고 있는 ㈜두본 대표의 이력은 ‘대학전공은 화학(공학), 아마도 해외 유학, 다수의 논문 혹은 연구경력 등’으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다 틀렸다.

이한종 ㈜두본 사장의 경력은 단출하다 못해 의의다. 가출, 고졸(용산 방송통신고), 무역회사 직원이 전부다. 화학의 ‘화’(化) 자도 없다. 그런 그가 어렵고 복잡하게만 여겨지는 화학과 연을 맺어 기업을 반석 위에 올렸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 서울역에서 귀인을 만나다

이 사장의 긴 여정의 출발지는 서울역이다. 이 사장은 중학교를 졸업한 16세 때 집안이 어려워지자 충남 천안에서 무작정 상경했다. 초라한 몰골로 두리번두리번 역 대합실에 앉아있으려니 누군가 말을 걸었다. 신사는 소년의 딱한 사정에 동향이라는 이야기까지 듣자 그를 자기 집에 묵도록 하고 일자리까지 줬다.

자칫 잘못된 길로 빠질뻔한 가출 소년에게 호의를 베푼 이는 조석희(당시 동남샤프 과장)씨였다. 덕분에 이 사장은 피붙이 하나 없는 서울생활에 적응하고, 어렵게 고등학교 공부도 계속 할 수 있었다.

주경야독을 했지만 대학갈 형편은 아니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던 1982년 국제종합건설㈜에 입사했다. 유일한 고졸 사원이었다.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을 누볐다. 그는 “처지에 굴하지 않고 계속 준비하고 노력했더니 기회가 오고 운도 따랐다”고 했다.

회사가 망한 뒤 몇몇 무역업체로 자리를 옮겨 다니느라 힘든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업무가 아니더라도 궁금했거나 공부하고 싶었던 분야가 있으면 꼭 현장을 찾았다. 남들 가기 싫어하는 곳에도 발벗고 나섰다. “이곳 저곳 영업하러 다니면서 사람 만나고 대화하고 배우다 보면 기발한 아이디어도 얻고 막힌 게 풀릴 때도 많아요.” 그가 터득한 삶의 지혜다.

단석산업에서 일할 때 일화다. 회사가 국내 모 대기업으로부터 납을 사오는데 가격도 공급도 늘 애를 먹었다. 이 사장은 자기 일도 아닌데 호기심이 생기자 업무를 떠맡았다. 결국 그는 여기저기 사람들의 도움으로 또 다른 납의 공급루트를 확보했다. 회사는 그 공을 인정해 특별보너스를 지급했고, 이는 후에 사업자금으로 긴히 쓰였다.

■ 안 되면 되게 하라

어느날 그의 눈에 화학이 보이기 시작했다. 모르는 분야라 더 끌린 데다 잘만 하면 돈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업무 틈틈이 공부를 했고 모르면 거래처를 찾아가 물었다. 화학에 대한 지식이 없다 보니 무엇보다 먼저 곳곳에서 연구진 8명을 확보했다. 목표는 친환경 소재 개발이었다.

드디어 그는 97년 청주시 모충동의 조그만 2층 임시사무실에 창업자금 1억원을 들여 ㈜두본을 창업했다. 1년 간의 각고 끝에 하이드로탈사이트(PVC용 첨가제 혹은 복합안정제)의 연구개발에 성공했지만 진입장벽은 산 넘어 산이었다.

당시만 해도 하이드로탈사이트의 원천기술을 가진 곳은 일본이 유일했다. 전적으로 수입에만 의존하던 국내 주요 석유화학 및 정유회사는 국내 업체, 그것도 이름도 생소한 두본의 제품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 사장은 제품 샘플을 들고 “제발 테스트만 해달라”며 울산 여수 등 거래처를 찾았지만 허사였다.

그는 그 동안 쌓은 영업력을 발휘했다. 이 사장은 “해당 기업 연구소의 연구원들이 만나주지 않아 밤마다 집을 찾아가 통사정을 하고, 대부분을 연구원에서 살다시피 해 나중엔 식구처럼 지냈다”고 회고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코방귀만 뀌던 연구원들은 결국 두본 제품의 품질 규격 등 검증절차에 돌입했고,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이 사장은 내친 김에 가격까지 내렸다.

■ 더 멀리, 더 길게 내다보다

국내 거래처가 하나 둘 생기면서 물꼬가 트이자 미국 캐나다 핀란드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호주 중국 대만 인도네시아 등에 수출 길도 열렸다. 영업력만 있고 기술 경쟁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지난해 7월 유럽이 6대 유해물질에 대한 사용제한지침(RoHS)을 시행하면서 두본의 하이드로탈사이트는 기존의 맹독성 물질(카드늄 납 등)을 대체할 친환경 화학소재로 각광 받아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심지어 선진국 바이어(Buyer)들이 두본의 기술력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공장이 있는 충북 청원군까지 방문할 정도였다. 외국인을 상대하기 위해 榴?화학에 이어 영어도 독학했다.

두본의 지난 1년간 수출실적은 550만 달러를 넘어섰고, 2009년 수출 1,000만 달러 시대를 열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10년 동안 국내ㆍ국제 특허 출원(또는 등록) 22건 등 친환경 유기ㆍ무기화학 소재 개발이라는 외길을 걸어온 덕분이다.

현재 이 사장은 국내 최초로 국산화에 성공한 하이드록시아파타이트(항균성 첨가제), 2002년부터 양산에 들어간 ‘비할로겐 난연재’(무독의 플라스틱 연소 억제 첨가제)에 주목하고 있다. 아울러 차세대 무독성 난연재 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는 화학 소재의 성장동력은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세계와 미래는 환경의 시대라 다기능성 환경친화 화학소재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습니다. 할게 없다고 하는데 화학 소재 분야만 해도 ‘안 해서 그렇지 안 되는 건 없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국내외 거래처를 방문하면 지금도 오히려 ‘이런 건 없어요’라고 묻거든요.” 그가 아직도 기업 연구소와 해외 곳곳에 발 품을 들이는 이유다.

● 2009년 군장산업단지 공장 증설미국·이탈리아 등에 현지화 추진

㈜두본은 플라스틱 첨가제 제조회사다. 동종 업체와의 차이점은 친환경 고기능 화학 소재를 잇따라 자체 개발해 글로벌 기업으로 가는 디딤돌을 놓았다는 것. 주력상품은 하이드로탈사이트와 하이드록시아파타이트, 비할로겐 난연재 등의 첨가제다.

생소한 용어지만 적용 원리는 의의로 간단하다. 플라스틱은 보통 불에 녹인 뒤 주물에 넣어 제품을 만드는데, 끈적여서 금속 틀에 달라붙고 모양이 변형돼 쉽게 녹아 타는 성질이 있다.

플라스틱 첨가제는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물질로 플라스틱 제품 제조 시 함께 처방 돼 들어간다.

하이드로탈사이트는 창틀 등에 쓰이는 PVC용 열 안정제 역할을 한다. PVC가 열에 잘 견디도록 도울 뿐 아니라 표면을 매끄럽게 유지해주고 PVC의 기능을 강화해 복합안정제로 불린다.

예전엔 카드늄 납 등 맹독성 물질로 첨가제를 만들었는데 독성이 전혀 없는 하이드로탈사이트가 이를 대체하게 된 것이다.

특히 유럽이 지난해부터 맹독성 물질을 사용하지 못하게 함에 따라 하이드로탈사이트의 수요는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두본은 이를 자체 개발, 생산, 사용화해 일본이 거의 독점하던 세계시장을 양분했고, 올해 상반기에 생산시설 1개 라인(연간 4,800톤 규모)을 증설한데 이어 2009년엔 군장산업단지에 추가 증설을 계획하고 있다. 올해 매출 목표는 200억원.

두본은 첨가제 하이드록시아파타이트도 국내 최초로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를 이용한 '무기 항균제'는 현재 생산 중이고 가전제품, 건축 내장재 등에 적용한 항균 제품도 곧 나올 예정이다.

불이 났을 때 유독가스를 발생시키지 않고 연소를 억제하는 첨가제 '비할로겐 난연재'는 높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플라스틱뿐 아니라 섬유 등 다양한 소재에 적용이 가능한 '차세대 무독성 난연재' 연구개발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해외영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 휴스턴, 대만 타이페이, 이탈리아 밀라노 등지에 현지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선진국 업체와 공동연구도 진행해 화학 소재 분야의 글로벌 리더로 올라선다는 전략이다. 2009년 코스닥 상장도 준비중이다.

청원=원유헌 기자 youhon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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